봉학이가 전주 와서 책방을 작별하여 보내고 계향이는 서울 전접하는 동안 있
으라고 떼어놓고 꺽정이와 같이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길을 돌아 죽산 칠장사에
들어가서 팔십 노인 선생을 뫼시고 수일 지내고 다시 꺽정이와 같이 떠나서 서
울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양주집으로 내려간 것은 말할 것 없고 봉학이는 서울
입성하여 곧 이윤우댁을 찾아가서 문안하고 다음날 비로소 궐하에 숙배하고 또
그 다음날부터 의흥중위인 외소에 출사하였다.
전란이 없는 평시에는 오위 각소가 다 일없는 마을들이라 봉학이가 마을일을
알게 되자마자, 곧 자기 벼슬이 재미가 없어서 이우윤께 이 뜻을 말씀하였다가
벼슬이란 재미를 취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꾸중을 듣고 다시 두말 못하였
다. 봉학이는 벼슬이 한가한 덕에 말미 얻기가 쉬워서 서울 문밖에 있는 부모
산소와 교하에 있는 외조모 산소에 소분할 뿐 아니라 교하 외숙에게와 양주 꺽
정이에게로 돌아다니며 여러 날을 묵었다. 유복이는 꺽정이 집으로 불러다가 처
음 만날 때 봉학이는 “유복아!”하고 부르고 유복이는 “봉학 언니.”하고 부르
고서 한동안 둘이 다 뒷말을 잇지 못하여 갑자기들 벙어리가 되었느냐고 애기
어머니에게 조소까지 받았었다. 청석골 가서 유복이를 불러온 사람은 꺽정이의
집에서 일해주는 새원 사람 신불출인데, 봉학이가 나중에 신불출이의 내력을 들
으니 다르내재에서 도적놈 노릇하던 중에 유복이 손에 혼이 나고 그 길로 훌륭
한 농군이 되어서 늙은 어미와 어린 자식을 기르다가 어미도 죽고 자식도 죽은
뒤에 평일 우러러보는 꺽정이에게로 와서 새경도 안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봉학이가 유복이를 보고 “신불출이 보기가 부끄럽지 않은가.”하고 말하니 유
복이가 머리를 숙이고 한숨만 쉬었었다.
봉학이가 양주서 올라온 뒤에야 비로소 이우윤댁 근처에 작은 초가집을 장만
하고 계향이를 데려다가 같이 살림을 하게 되었는데, 교하 안해가 외숙과 같이
올라온 것을 봉학이가 인정없이 도로 쫓아 내려보냈더니 불과 며칠 뒤에 안해가
죽었다는 기별이 와서 봉학이는 다시 교하 내려가서 죽은 안해를 감장하였다.
수문장이 따로 없고 사품 이상 무변들이 번차례를 돌려가며 궐문과 성문을 수
직하던 때나 사품 이상 무변들이 흔히 자기 마을의 아래 동관들을 대신 시키는
까닭에 이봉학이도 위장들을 대신으로 여러 차례 창덕궁, 경복궁 두 대궐문을
수직하였다. 왕대비전하 왕전하가 다 창덕궁에 와서 계신 중에 어느 날 봉학이
가 금호문을 수직하게 되었는데, 이날 다 저녁때 기생같이 치장을 차린 하님 하
나가 보자로 싼 목판을 머리에 이고 문앞에 와서 “영부사댁이오.” 말 한마디
하고 바로 궐내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군사가 막지 아니하여 봉학이가 앞으로
나서서 “내 말두 들어보지 않구 어디를 들어가!”하고 가로막았다. “영부사댁
에서 왔단 말 듣지 못했소?” “영부사댁에서 왔더래두 수직하는 관원의 허락을
받구 들어가야지.” “그래 나를 못 들어가게 하겠단 말이오?” “영부사댁 하
님이면 권문 출입하는 법을 잘 알겠네그려.” “누가 모른답니까?” “알거든
어서 선인문으로 가게.” “왜 선인문으로 가라오?” “아는 건 무얼 알았나. 이
금호문은 조신이 드나드는 문이구 돈화문은 대간이 드나드는 문이구 자네 따위
드나드는 문은 선인문이야. 어서 그리 가게.” “별소리 다 듣겠소. 우리는 이때
까지 이 문으로 드나들었소.” “거짓말 아닌가?” “누가 당신하고 말하잡디까.
”하고 하님이 눈을 똑바로 뜨고 얼굴을 치어다보니 봉학이가 괘씸한 생각이 왈
칵 나서 “맨망스러운 년이구나.”하고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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