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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1)

카지모도 2023. 3. 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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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서림

 

1

을사년에 십이 세 된 어린 왕이 등극한 후 윤원형이 왕대비의 동기로 권세를

잡기 시작하여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발호가 차차로 심하여져서 주고 빼앗는

것은 차치하고 살리고 죽이는 것까지 거의 임의로 하게 되니 조정이 왕의 조정

이 아니요, 곧 윤원형의 조정이라 왕이 연세가 이십이 가까우며부터 내심으로

윤원형이를 몹시 꺼리었다. 그러나 대비가 엄하기 짝이 없어서 왕이 조금만 뜻

을 거슬려도 곧 화를 내며 “네가 오늘날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 뉘 덕이냐? 내

오라버니와 내 덕이 아니냐!“ 왕을 너라고 하고 야단칠 뿐 아니라 심하면 두들

기까지 하여서 효성 있는 왕이 대비께 승순하기를 힘쓰므로 윤원형의 권세를 빼

앗을 가망이 없없다. 왕은 윤원형의 권세를 갈라나 보려고 생각하고 갈라 줄 만

한 사람을 왕비 심시 곁쪽에 물색하여 보았으나, 왕비의 조부 심연원 심정승이

사람이 점잖고 조심성이 많아서 조각 권세나마 잡지 못하도록 자제들을 누르고

부원군 심강이 그 부친의 뜻을 잘 받아서 조정 정사를 조금도 알은체하지 아니

하던 때 마침 부원군의 처남이요, 왕비의 외숙인 이량이 등과하니 왕은 이량을

등용하여 윤원형과 권세를 갈라잡게 하려고 유의하였다. 이량이 상총받는 것을

보고 이량에게 붙좇는 사람이 많아져서 조신중의 이감, 권신, 고맹영, 김백균, 이

령의 무리는 이량의 심복이란 지목을 받았다. 윤원형과 원혐이 있어서 이량에게

붙이는 축에는 윤원형의 친조카 윤백원 같은 사람이 있고 윤원형과 이량의 사이

에서 두길보기하는 축에는 을사년 위훈에 참예한 김명윤 같은 사람이 있었다.

윤백원은 원로의 아들이니 그 아비를 죽인 사람이 실상은 삼촌이라고 원형을 아

비 죽인 원수로 여기는 사람이고, 김명윤은 소시에 다소간 이름이 있어서 기묘

년 현량과에 참예하였던 위인이 나중에 개두환면하고 나서서 벼슬을 다니다가

을사년에 경기감사로 애매한 계림군과 봉성군을 모함하고 사림에까지 해독을 입

힌 사람인데, 나이 젊은 이량을 아비같이 섬겨서 ‘늙은 아들이 젊은 아비’ 란

말까지 있었다. 평안도관찰사가 궐이 난 때 이랑이 극력 주선하여 김명윤을 평

안도관찰사를 시키고 위에 바칠 진기한 물품을 많이 구하여 보내 달라고 비밀히

부탁하였다. 이때 이랑이 상총을 굳히려고 가지각색 진기한 물건을 널리 구해서

위에 바치는 중이었다. 김명윤이 평안도로 떠나기 전에 윤원형에게 하직하러 왔

더니 윤원형이 마침 사랑에서 문객을 데리고 바둑을 두는데, 김명윤이 방에 들

어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도 간신히 고개만 한번 끄덕하고 장지 밖에 끓어앉은

김명윤은 보지 않고 바둑판을 들여다보면서 ”대감, 어느 날 떠나겠소?“ 하고

물어서 ”일간 곧 떠나겠습니다.“ 하고 김명윤이 대답하였다. ”공거의 슬하를

떠나기가 섭섭지 않소?“ ”공거의 슬하라니 대감께서도 실없은 말씀 하십니까.

“ ”공거가 대감의 젊은 아비라고 세상에서 말들 한답니다그려.“ 하고 윤원형

이 껄껄 웃으며 비로소 바둑판을 밀쳐 내놓았다. 김명윤이 문객 보기 부끄러워

서 잠깐 얼굴을 붉히었다가 곧 비위 좋게 ”실없는 말씀 맙시오. 하고 싱글싱

글 웃었다. “니는 실없은 말로 한 말이 아니오.” “실없은 말씀이 아니시라는

건 더욱 심하신 말씀이올시다. ”“참정 공거보고 호부한 일이 있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내게 호부 좀 하오.” “이번 말씀도 실없은 말씀이 아니오

리까.” “실없은 말을 했소. 실상 나는 공거보고 호부하는 사람에게 호조받기도

원치 않소.” “소인 같은 낫살 먹은 것을 더 놀리시면 대감의 덕이 손상되

십니다.” 윤원형이 김명윤의 말은 듣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한 뒤 “어

째 졸리다.” 하고 혼자 말하였다. “곤하시면 좀 눕시지요.” “글쎄, 낮잠 한숨

자볼까.” “소인은 곧 하직 여쭙겠습니다.” 하고 김명윤이 일어나서 절하였다.

“평안히 가우.” “안녕히 기십시오.” 김명윤이 윤원형의 집 사랑 대문 밖에

나섰을 때 윤원형과 바둑두던 문객이 쫓아나왔다. “나를 부르시나?” “아니올

시다. 시생이 대감께 청할 말씀이 잇습니다.” “무슨 말인가?” “오늘 밤에 대

감께서 댁에 기가시겠습니까? ”내게 오려나?“ ”댁에 기시면 가보입지요.“

”가만 있게. 오늘 밤에는 내가 집에 없을는지 모르니 내일 아침에 오게.“ ”그

럼 내일 아침에 꼭 가겠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윤원형의 집 문객이 김명윤을

찾아왔다. 윤원형의 집 문객 중에도 윤원형에게 가까이 도는 문객이라 김명윤은

지체 않고 곧 맞아들이고 인사 수작이 끝난 뒤에 먼저 ”내게 무슨 청할 말이

있나?“ 하고 물었다. ”사람 하나 구처해 줍시사구 청하러 왔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광주 사람에 서림이란 자가 있습니다. 그자가 말하자면 시생과

세의도 있고 친분도 있는 터인데 위인은 똑똑하고 영리해서

백집사하가감입니다.“ ”광주 사람을 평안감사에게 청하다니 우습지 않은가?

“ ”시생의 말씀을 더 들어주십시오. 서림이란 자가 광주 아전으로 경기감영

영리를 다니었는데 지금 함경감사가 경기감사로 있을 때 그자를 무엇에 밉게 보

았는지 포흠 있는 것을 탈잡아 온 뒤에 구실을 떼고 잡아 가두기까지 했었습니

다. 그자가 놓여나온 뒤에 시생에게 와서 먹고 살게 해내라고 매어달리니 인정

에 차마 떼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작년에 평양 서윤이 새로 부임할 때 천거

해서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아직까지 서윤의 심부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평양

가셔서 불러보시구 구실 하나 붙여 주셨으면 시생에겐 대단 생광스럽겠습니다.

“ 문객의 말이 다 끝난 뒤에 김명윤이 ”그자의 성명을 쪽지에 적어서 나를 주

게. 아무쪼록 잊지 않도록 함세.“ 하고 문객의 청을 허락하였다.

김명윤이 평양에 도임한 뒤 어느 날 우연히 성명 적은 쪽지를 보고 윤원형의

문객의 부탁을 생각하고 사람을 불러보았다. 서림이는 문필이 있고 언변도 좋고

남의 뜻을 짐작도 잘하고 비위를 맞추기도 잘하였다. 김명윤이 서림이를 신통하

게 보아서 수지국 섭사를 시켜 가까이 부리는 데 한번 조용한 틈에 불러서 물어

보았다. “내가 경기감영 영리로 포흠을 많이 진 일이 있었다지?” “녜,황송하

옵니다. 소인이 적지 않은 포흠을 진 일이 있었소이다. 소인의 늙은 아비가 중병

으로 죽게 되었삽는데 의원 말이 산삼 반 근 가량 먹여야 살릴 수가 있다고 하

옵기에 소인이 우매하온 소견에 아비 대신 죽어두 좋거니 생각하옵구 막중 상납

에서 범포를 내서 병든 아비에게 산삼을 먹였소이다. 아비가 산삼 효험으로 병

은 좀 나았사오니 소인이 잡혀 갇힐 때 놀라서 소인 옥에 있는 동안에 죽었소이

다. 소인이 아전으루 포흠 지옵구 자식으루 불효하온 것이 실상은 생각 한번 잘

못 먹은 탓이외다. 하여간 소인은 천지간에 용납키 어려운 죄인이올시다.” 서림

의 아비가 자식이 옥에 갇힌 동안에 죽은 것은 정말이나 서림이가 아비를 산삼

먹이느라고 포흠 졌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김명윤이 이 거짓말을 알

까닭이 없어서 서림의 거짓말을 정말로 듣고 “포흠을 진 것은 죄로되 포흠진

이면에는 효심이 있으니 내가 그때 경기감사로 있었든들 네 죄를 용서하였겠다.

” 하고 말하니 “황송하오이다.” 하고 서림이 눈물까지 흘리었다. “네 처자는

지금 어디 있느냐?” “소인의 처는 자식 남매 데리구 처가에 가 있소이다.”

“처가는 어디냐?” “경기 양지 올시다.” “처자를 이리 데려올 생각이 없느

냐?” “사또께옵서 내년에 내직으루 승탁되옵시거든 소인두 사또를 뫼시구 가

서 일평생 댁 낭하에서 살기가 소원이올시다.”“서울 갈 때 가더라두 여기서

살림 못할 것 무어 있느냐.” “데려오구 데려가구 하기가 번가하와 한 일 년

더 객지에서 지내려구 생각하옵네다.” “시종이 여일하게 성심으로 일만 잘해

라. 그러면 내년에 서울로 데리고 가마.” “사또 분부면 부탕도화라도 질겨 하

겠소이다.” 이후로 김명윤은 서림을 더욱이 신임하여 진상할 물건 구하는 일을

맡기었더니 서림이 영롱한 수단으로 각 골 토산과 중국 물품을 구하여들이되 감

사의 체면을 다치지 않게 하였다. 김명윤은 서림이를 사자 어금니같이 여기게

되어서 반 년 동안에 서림이를 섭사에서 급사로, 급사에서 장사로 올려서 수지

국일을 주관하게 하니 이런 발탁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서림이 감사에게 긴한

것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서림이의 환심을 사려고 하여서 “서장사, 나 좀

보시우.” 하고 보자는 사람도 많고 “서장사, 놀러나갑시다.” 하고 끄는 사람

도 많았다. 서림이 본래 계집을 좋아하건만 감사의 눈 밖에 날까 조심하여 기생

집에 잘 가지 않던 사람이 남에게 끌려서 한번 두번 놀러다니는 중에 조심이 풀

려서 밤은 고사하고 낮에도 틈이 있으면 기생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서림이는

풍류를 짐작하고 시조를 얌전히 부르고 또 우스갯소리를 잘하여 감사에게 일간

인 것을 자세하지 않더라도 기생들에게 떠받들릴 만하였다. 여러 기생들이 서림

이를 친하려고 애쓰는 중에 감사의 수청기생 옥부용이가 저의 거문고 조예를

알아주는 맛에 서림이에게 정을 주었다. 감사의 신임을 받은 서림이가 감사의

총애를 받는 옥부용과 서로 배가 맞아서 감사의 속을 뽑아내되 감사는 둘을 다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는 법이라 서림이와

옥부용의 사이를 눈치챈 사람이 하나씩 둘씩 생겨서 감영 하인들이 쑥떡쑥떡 말

하게 된 끝에 예방비장의 귀에 말이 들어갔다. 예방비장은 서림이를 곱지않게

보는 사람이라 곧 감사에게 고하려다가 다시 생각하고 서림이를 불러다가 말을

물었다. “자네가 옥부용의 집에 자주 놀러간다니 정말인가?" "더러 갔습니다.

그러나 자주 간 일은 없습니다." "더러는 어째 갔나?”.“옥부용이 거문고를 들

으러 오라구 불러서 갔습니다." "선화당 수청을 자네가 데리구 놀아두 아무 탈이

없을까?" "사또께 가까이 뫼시는 아이라 데리구 실없는 말 한마디 한 일이 없습

니다." "상관까지 했단 소문이 자자한데 무슨 딴소리야!"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정말인가?" "정말이다뿐입니까.” 아무리 물어야 서림이가 잡아뗄 줄 알고 예방

비장은 묻기를 멈추고 한동안 서림이를 노려보다가 “자네말이 정말 같지 않으

나 내가 한번 속는 셈 잡구 아직 덮어 둘 텔세. 그 대신 오늘부터 다시는 옥

부용의 집에 가지 말게. 한번이라두 갔단 말이 내 귀에 들리면 곧 사또게 여쭤

서 별반거조를 낼 테니 그리 알게.” 하고 말을 이르니 “황송합니다. 나리 분

부대루 이담엔 다시 안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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