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6권 (45)

카지모도 2023. 5. 4. 06:15
728x90

 

 

이방의 첩이 나이는 삼십줄이나 아이낳이를 못한 까닭에 젊은티가 아직 가시

지 않고 사람이 워낙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생겨서 이십 안짝 계집같이 앳되어

보이었다. 꺽정이가 이방을 삼씨오쟁이 지우기 미안한 생각도 있고 계집의 꼬리

치는 것을 괘씸히 여기는 생각도 없지 않건만, 계집의 마음을 사두는 것이 좋을

뿐 아리라 얼굴 곱살스러운 계집이 옆에 와서 부니는 것이 마음에 싫지 아니하

여 계집을 손에 넣었다. 큰집에 심부름 갔던 어린년이가 돌아와서 “삽작문 열

어주세요. 삽작문 열어주세요. ” 여러 차례 소리를 지른 뒤에 이방의 첩이 비로

소 건넌방에서 나가서 삽작문을 열어주었다. 어린년이가 해찰하느라고 늦어서

주인에게 잔소리 마디나 좋이 들으려니 하고 왔더니 의외에 주인이 아뭇 소리도

아니하여 고개를 들고 주인의 얼굴을 치어다본즉 신관이 틀린 것이 병난 사람

같았다. “어디 편찮으세요? ” “속이 거북해서 누웠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다.

” “찬 건넌방에 왜 가서 누워 기셨세요? ” “다락문 밑에 누웠기가 싫어서

건넌방으로 갔었다. ” “지금은 속이 어떠세요? ” “잠깐 자는 동안에 속은

좀 너누룩해졌다. 그러나 저녁이 늦겠다. 쌀 내주께 이리 오너라. ” 어린년이가

저녁쌀을 이남박에 받아가지고 샘으로 씻으러 나간 뒤에 꺽정이는 다락으로 올

라갔다. 막봉이와 능통이가 처음에 자다 깨어서 꺽정이 없는 것을 보고 혹시 뒤

가 급하여 밤까지 참지 못하고 낮에 뒷간에를 갔는가 생각들 하는 중에, 건넌방

에서 웃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능통이가 선뜻 짐작하고 막봉이와 서로 뒷공

론들 하며 꺽정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꺽정이가 다락에 올라와 앉은 뒤

에 능통이가 “건넌방에 가서 기셨지요? 건넌방에서 무어 하셨습니까? ”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건너방에 가서 주인 기집을 상관했네. ” 하고 대답하는데

예삿말같이 수월스럽게 대답하였다. “그게 웬일입니까? ” 꺽정이가 다락에서

부터 건넌방에 간 뒤까지 남녀간 수작된 것을 대강 이야기하니 막봉이는 바로

“형님 기집복도 무던하구려. ” 하고 웃고 능통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박차시지

않기를 잘하셨습니다. ” 하고 칭찬하였다. 그 뒤에 세 사람이 이방의 작은집

에서 십여 일 묵는 동안 이방의 첩이 어린년이 하나를 데리고 삼시 공궤를 하고

간간이 땀찬 옷가지들을 빨아주고 막봉이가 장창약 한 제를 먹는 데 일재복하는

약시중까지 들되 군소리 한마디가 없었다.

막봉이가 약 한 제를 먹은 뒤에 장창이 전보다 훨씬 빨리 나아서 비스듬히밖

에 못 앉던 사람이 꼿꼿이 앉게 되고, 번듯이 누우려면 아랫도리를 드느라고 두

다리를 세우던 사람이 다리를 쭉 뻗고 번듯이 눕게 되었다. 꺽정이는 이방이 없

을 때 그 첩을 가로차 가지고 노는 데 맛을 들였던지 막봉이의 장창이 다 합창

된 걸 보고서도 떠날 의논을 먼저 내지 아니하여 막봉이가 꺽정이를 보고 “형

님, 인제 고만 떠날 생각 좀 해봅시다. ”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대번에 “네가

지금 말을 탈 수 있겠느냐? 아직 좀더 있어야지. ” 하고 대답하였다. “ 말은

고만두구 걸어라두 갈 수 있소. ” “나 보기엔 아직 말두 잘 못 탈 것 같다. ”

“안장마구 부담마구 아무거나 다 탈 수 있으니 염려 마시우. ” “그러면 곧

떠나지. 누가 붙들어서 못 떠나겠느냐. ” “형님은 혹 붙드는 사람이 있는지두

모르겠소. ”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두 마라. ” 능통이가 옆에 있다가 꺽정

이더러 “길두령 장독두 거의 다 낫구 했으니 연로의 소식이나 자세히 알아보구

속히 떠날 준비를 차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그래

보세. ” 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청석골 가는 길에 기찰이 어떠한가 알아보기

겸 타고 갈 말들을 준비시키려고 능통이의 데리고 온 졸개 하나를 메주고개까지

보내자고 의논이 되었는데, 이방에게 말 안하고 보낼 수 없어 이튿날 보내기로

작정들 하고 있을 때 이방이 이 날은 일찍 나와서 안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곧

세 사람이 있는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오늘은 일찍 나왔네. ” 하고 능통이가

인사로 말하니 “오늘은 별일두 없거니와 소식 들은 것이 있어서 얼른 와서 알

려 드리려구 일찍 나왔소. ” 하고 이방이 대답하여 “무슨 소식인가? ” “무

슨 소식이오? ” 세 사람이 다같이 이방의 입을 바라보았다. “청석골 괴수들이

상인들루 변복하구 도망해 갔단 소문이 있어서 도망해 간 경로를 탐지해 본즉,

용인, 안성을 지나 인천 가서 배를 타구 풍덕 조강가서 배를 내린 것이 형적이

확실한 까닭에 안성 내려왔던 포도부장과 포도군사들은 서울루 거쳐 올라가구

안성 인근읍의 군총 뽑았던 것은 도루 다 헤쳤답디다. ” 이방의 말하는 소식을

듣고 꺽정이는 빙그레 웃고 능통이는 입을 막고 웃으나 막봉이는 큰소리로 너털

웃음을 웃어서 이방이 “쉬 쉬. ” 하며 손을 내저었다. 막봉이의 웃음이 끝난

뒤에 능통이가 이방을 보고 “그럼, 청석골 가는 연로의 기찰두 풀렸겠네그려.

” 하고 말하니 이방은 고개를 외치며 “연로의 기찰은 그렇게 쉽게 풀릴 리 없

소. 지금 청석골을 갈라면 딴 길루 돌아가야지 곧장은 못갈 것이오. ” 하고 대

답한 뒤 “내가 노정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데 여기서 장호원으루 나가서 여주,

양근, 가평, 포천, 영평, 연천, 삭녕 등지를 자나서 가면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

습디다. ” 하고 말하였다. 이방이 말하는 노정이 서울을 비키고 또 임진나루를

비키었으나 장호원이 안성, 죽산서 가깝고 연천, 삭녕이 임진나루서 멀지 아니하

여 비록 직로는 아니라도 거침이 바이 없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돌아간다구

길이 안전할는지 모르겠소. ” 하고 꺽정이가 말하니 “강원도 땅으루 돌아가면

거침이 아주 없을 테지만 그러면 너무 많이 돌지요. ” 하고 이방이 대답하였다.

“이왕 길을 곧장 못 가구 돌 바에는 강원도 땅으루 돌아가두 좋소. ” “그러

면 더 말할 것 없이 강원도 땅으루 작로할 작정하시우. ” “우리가 인제 수이

떠날 텐데 떠나자면 다소 준비할 것이 있소. ” “준비할 것을 말씀하면 아무쭈

룩 낭패 없두룩 해드리리다. ” 꺽정이가 능통이를 돌아보며 “다락에 가서 짐

짝을 좀 들어오게. ” 하고 말하여 능통이가 상자짝을 가져온 뒤, 꺽정이는 친히

상자를 열고 금은붙이를 몰수히 꺼내서 이방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물건이 모두

봉지에 싸인 것이라 이방이 “이것이 무엇인가요? ” 하고 물어서 꺽정이가 봉

지들을 펴서 보이는데 능통이가 전에 가지고 왔던 금은붙이 외에도 금은 패물이

값나갈 물건이 여러 가지 더 있었다. “이건 무어할 것이오? ” “우리 떠날 준

비에 비용 드는 걸 이걸루 쓰시우. ” “길 떠날 준비에 무슨 비용이 그리 많이

들리라구 이 많은 보물을 다 내놓으시우. ” “우리 셋이 댁에 와서 신세진 건

물건으루 갚을 수가 없지마는 전에 얻어간 무명값과 이번에 드는 비용쯤은 우리

가 내는 것이 좋지 않소. ” “그러면 이 중의 한두 가지만 해두 넉넉하우. ”

“넉넉하구 못하구 따질 것 없이 다 받아두시우. ” “주시는 게니 정으루 받겠

소. 내가 연래에 포흠이 좀 생겼는데 이걸 변매해서 포흠을 들여놓겠소. ” “그

건 처분대루 하시우. 단지 패물 중에서 두 가지만 남겨서 안주인을 주셨으면 좋

겠소. ” “향일에 주신 은투호를 밤저녁에 가끔 차

구 나앉는 꼴이라니 참말 가관이오. ” “받은 사람이 좋아해야 준 보람이 있지

않소. ” “말씀대루 이 중에서 한두 가지 주리다. 그런데 준비하실 것은 무엇무

엇이오? ” “첫째 우리 셋의 관망과 의복을 준비해야겠소. ” “복색을 어떻게

차리실 테요? ” “셋이 다 호반 복색을 차렸으면 좋겠소. ” “당상호반으루

차려서 망건 뒤에 옥관자까지 달두룩 준비하리까? 타실 것은 말이래야 쓰겠소그

려. ” “탈것은 내일 사람을 용인 보내서 준비시키자구 이야기를 했소. ” “그

럴 것 없소. 내가 다 준비하리다. ” 꺽정이가 의향이 어떠냐 묻는 것같이 능통

이를 돌아보니 능통이가 이방더러 “견마잡이와 하인두 있어야 할 테니 어차피

사람은 한번 보내야겠네. ”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사람만 불러오두룩 하시구

려. ”“말을 한 바리두 아니구, 세 바리씩이나 여기서 얻을 수 있겠나? ” “얻

을 수 없으면 사지요. ” “말은 고만두구 복색과 길양식이나 준비해 주게. ”

“사람은 내일 식전에 떠나보내시겠소? 남의 눈에 뜨이지 않두룩 밤에 가구 밤

에 오게 하면 어떻소? ” “그럼 오늘 밤에 곧 떠나보내지. ” 건넌방에서 이야

기들 하는 동안에 저녁때가 다 되고 나무꾼이 돌아왔다. 나무꾼이 저녁밥을 먹

은 뒤에 능통이가 불러서 메주고 개를 다녀오는데 용머리도 들러오라고 말을 일

러서 밤길로 떠나보냈다. 용인 보낸 사람이 삼사 일 지나서 돌아오는데 탈것을

세 필 얻어왔으나 세 필 중에 한 필은 나귀요, 한 필은 노새요, 한 필만 말이었

다. 말 세 필을 얻어오라고 일러보냈는데 나귀, 노새로 수를 채워 왔고,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네댓 데리고 오라고 하였는데 겨우 둘만 데리고 왔었다. 간 사람

이 심부름을 잘못하였다고 능통이가 꾸짖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이 메주고개 사

정을 이야기하며 발명하였다.

메주고개 밑에서는 달골서 간 사람들을 받아서 겨우 안접시키자마자 달골 사

람들 온 것이 용인 관가에 입문되어서 새로 온 사람, 원래 살던 사람 여럿이 관

가로 잡혀 들어갔는데, 괴수들의 있는 곳을 대라고 갖은 악형을 다하여 그 동안

장하에서 죽은 사람도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도 곧 서울 가서 능지를 당하게

된단 말이 있다고 뒤에 숨어 있는 식구들이 눈물로 날을 보내는 중이라, 용머리

와서 말, 사람을 얻어가지고 왔다고 그 사람이 이야기를 마친 뒤에 능통이는 한

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나중에 “용머리서 사람이나 네댓 데리구 오지야. ” 하고

말하였다. “처자식 있는 놈들은 오려구 하지 않습디다. ” “내가 어디 있는 것

을 알구 싶어들 하지 않더냐? ” “왜요? 대구들 캐어묻습디다. ” “그래 어디

있다구 말했느냐? ” “새재 밑에 숨어 기시다구 말했습니다. ” “여기 있다구

는 말한 데 없겠지? ” “말 말라신 걸 말할 리가 있습니까? ” “잘했다. ”

능통이가 새로 온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서 그 동안 용머리서 포도군사들에게

부대낀 것을 대강 물어본 뒤 행랑으로 내보내서 쉬게 하였다. 전에 데리고 온

사람 둘에 이번 새로 온 사람 둘을 합하면 사람이 모두 넷이라 견마 잡히고 길

양식 지우기에는 수가 부족할 것이 없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7권 (1)  (0) 2023.05.07
임꺽정 6권 (46, 完)  (0) 2023.05.04
임꺽정 6권 (44)  (0) 2023.05.03
임꺽정 6권 (43)  (0) 2023.05.01
임꺽정 6권 (42)  (0)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