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02

임꺽정 9권 (24)

“그래 이야기가 어떻게 됐소?” “손동지 말이 그런 일은 정경부인께루 말을 들여보내면 제일 속한데 이십 동쯤은 안에 바쳐야 하구 그외에 댓 동 더 있어야 자기하구 시녀들하구 노놔 쓴다구 스물 닷 동을 주어야 일을 해보 겠다구 합디다. 그래 여러 가지루 사정해서 우사는 떼구 이십 동만 주기루 했소. 손동지가 사람은 좋지만 속이 좀 컴컴하니까 이십 동을 가지구 정경부인하구 반 분할는지두 모르지요.” “인제 이십 동만 구처하면 일은 됐구려. 이십 동을 김 선달이 다 구처해 주겠소?” “처음에두 말씀했지만 나는 동대서 취해두 십여 동밖에 더 끌어 댈 수 없는걸요.” “내가 오늘 문안에 들어가서 한 군데 열 동 을 말해놓구 왔는데 꼭 될는진 모르나 내일 식전에 찾으러 보내 보게 사람 하나 를 얻어주우.” “집의 ..

임꺽정 9권 (23)

이튿날 첫새벽에 서림이가 꺽정지의 얼룩말을 자견하여 타고 서울길을 떠났 다. 이 얼룩말은 꺽정이가 전 봉산군수 윤지숙이게서 뺏어온 것인데, 걸음을 잘 하여 겨울 짧은 해에도 일백이삼십 리 가기는 무난하였다. 서림이가 첫날 혜음 령에서 혜음령패의 괴수를 만나서 그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때 좀 지나서 남대문밖 김치선이 객주에를 들어와서 뒤채의 조용한 방을 치우고 들어앉은 뒤, 주인 김선달과 포청에 갇힌 처남 빼내올 도리를 의논하였다. “좀스러운 야경벌 이하다가 잡혔으면 포청에서 두 달씩이나 가뒤둘 까닭이 있나요? 벌써 형조루 넘겨서 결말을 지었겠지. 오래 가둬 두는 내막을 먼저 알아봐아겠소.”“그래 나 두 그렇게 생각하우. 그런데 그걸 오늘 곧 알아볼 수가 있겠소?”“그렇게 빨리 알아보기는 좀 어려운걸..

임꺽정 9권 (22)

큰 손가의 안해는 남편이 증왕에 은혜를 받은 까닭으로 서림이를 감지덕지 하는 사람이라, 그 장모를 친절하게 대접하여 방에 누워 있는 남편을 밖으로 불러내 고 방안에 들여앉힌 뒤 화로를 갖다가 앞에 놓아주고 불까지 헤쳐 주며 쪼이라 고 권하였다. “내 딸이 여기 가까이 있소?”“산에 기시지요.”“산이란 데가 예서 머우?”“십리길이라도 평지길 이십리 맞잡이라구들 합디다.”“그럼 내가 지금 곧 그리 가야겠는데, 길 가르쳐 줄 사람을 하나 얻어 주시겠소?”“가만히 계세요. 우리 시동생더러 말해 보겠세요.” 큰 손가의 안해가 서림이의 장모를 방에 앉혀 두고 밖에 나와서 옆집을 향하고 “여보게 여보게?”하고 소리치니 그 동서가 녜 하고 대답하였다. 형과 한집에 같이 살던 작은 손가가 그 동안 옆 집을 사서 따로 살..

임꺽정 9권 (21)

이흠례를 잡아 죽이기로 의론이 일치한 뒤 “잡아 죽이자면 어떻게 해야 좋겠 소?” 하고 꺽정이가 서림이에게 물으니 “글쎄올시다.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 하고 서림이는 대답하였다. 서림이의 생각한단 말에 비위가 거슬린 곽오주가 별안간 큰소리로 “여보 대장 형님?” 하고 꺽정이를 부르고 “기급할 생각 다 고만두고 우리가 다 쏟아져가서 봉산군수놈두 죽이구 봉산읍내도 도륙냅시다.” 하고 말한 뒤 오가의 본을 떠서 “내 말이 어떻소?” 하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꺽정이가 곽오주에게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고 꾸짖고 다시 서림이를 돌아보며 “별루 좋은 꾀가 없다면 내가 단신으루 봉산 가서 찔러죽이구 오겠소.” 하고 말하니 “자객질은 위험합니다.” 하고 서림이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위험 해? 무얼 내가 대낮에 ..

임꺽정 9권 (20)

“자네가 오두령하구는 못볼 사인가?” “나까지 따라가서 무어하나. 자네들 둘이 만 잠깐 갔다오게.” 한온이와 이춘동의 수작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앉아서 웃기만 하던 김산이가 이춘동을 보고 “가기 싫다는 사람은 고만두구 우리만 갔 다오세.” 말하고 먼저 일어났다. 이춘동이가 김산이를 따라가서 오가를 인사하 고 도로 올 때 “오씨가 쉰셋이랬지? 어디 오십 넘은 늙은이 같은가. 우리보다 몇 살 더 먹어 보이지 않데. ”“상배하기 전까지는 흰털 하나 없었는데 지금은 수염이 희끗희끗해서 늙은이 같지.”“지금두 박두령보다 되려 젊어 보이데. 박 두령은 거의 반백이데그려.” “박두령은 조백이지.” “오씨가 이름은 무언가? ” “오두령의 이름은 오래 같이 지낸 박두령두 몰랐었는데 연전에 한두령의 아 버지 한첨지가 대장..

임꺽정 9권 (19)

“내 처남아이가 그때 재령서 통인을 다녔는데 그 애가 뒷길루 기별해 주어서 우리가 몰사죽엄할 것을 면했소. 졸개 삼십여명은 사방으루 헤처 보내구 나하구 박대장하구는 집안 식구를 데리구 재령 사자목이란데 가서 숨어 있다가 바람 잔 뒤에 나왔소. 그때 이야기가 이왕 나왔으니 말이지만 세상에 그런 법두 있소? 일은 당신네가 저지루구 벼락은 우리가 맞친단 말이오?” “내게는 매원하지 마우. 나두 평양 봉물에 벼락맞은 사람이오. 그 매 원받을 사람을 내가 가르쳐 줄께 내 속까지 시원하두룩 한번 실컨 매원할 테요? ” 하고 꺽정이가 껄껄 웃으니 “매원 부탁을 받기는 내가 사십평생 처음인데. ” 하고 이춘동이도 따라 웃었다. 서림이가 매원받을 사람이 나라는 듯이 나서 서 “참말 당신네들은 우리를 여간 원망하지 않았을..

임꺽정 9권 (18)

“그래 그 사람이 대장을 한번 만나보인 뒤에 입당할 의사루 말합디까?” “아니오. 그 사람은 곧 입당할 생각두 없지 않은데 그 어머니 대문에 자저하는 모양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자저하다니?” “그 어머니는 아들이 지금같이 양민 노릇하구 사 는 걸 대단히 좋게 여기는갑디다.” “김두령이 그 어머니의 말을 들어봤소?” “아니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더러 너의 어머니가 전에는 양민 노릇을 하지 말래서 운달산패에 들어갔었느냐구 물어보시지.” “ 대장께 여쭙구 차차 권해 볼 작정인데 내가 힘써 권하면 대개 입당할 겁니다.” “사람이 대관절 미덥기나 하우?” “사람이 미덥지 못하면 내가 여기를 데리구 올 리가 있나요. 사람만은 의심없지요.” “사람이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몇 번 고쳐 ..

임꺽정 9권 (17)

개고기 편육 한 대접 한 목판을 안주로 놓고 술들을 먹는데, 이춘동이가 한입 에 고기를 두서너 점씩 넣고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키는 것을 김산이는 구경하듯 바라보다가 “인제 알구 보니 자네가 사람이 아니라 개호줄세그려.” 하고 웃으니 이춘동이가 입에 든 고기를 삼키고 나서 “어른더러 욕하면 오래 산단다. 어서 욕해라.” 대꾸하고 마주 웃었다. “자네가 전에두 개를 잘 먹었든 가?” “내가 전에는 개비린내가 싫어서 복날 개장국두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참말 개호주 한 분과 십여년 같이 지내는 동안에 식성이 변했네.” “박연중이 란 이가 개고기를 잘 먹나?” “잘 먹는다마다, 지금 환진갑 다 지난 늙은이건 만두 우리버덤 곱절 많이 먹네.” “그가 젊어서 장사 소리 들은이라데그려.” “지금 늙은이라두 ..

임꺽정 9권 (16)

김산이가 우두머니 서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이춘동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산역하는데 와서 일을 보았다. 해질 무렵에 상행이 들어와서 전을 지낸다. 상두꾼 술을 먹인다, 한참 수선한 중에 이춘동이가 저녁 먹으러 가자고 부르러 와서 김산이는 가까스로 틈 을 타서 주상하는 늙은이에게 의외에 옛친구를 만나서 그 사람의 집으로 저녁밥 먹으러 간다고 말하고 이춘동이를 따라왔다. 이춘동이의 집은 산밑에 있는데 집 이 커서 어림에 한 이십 간 되는 것 같았다. 바깥방은 치지 말고 안으로만 방이 셋인데, 그 중의 제일 작은 아랫방도 간반이 이간같이 널찍하였다. 이춘동이의 어머니는 환갑 늙은이가 칠십이 넘어 보이도록 나이보다 더 늙었고, 이춘동이의 안해란 안핸지 첩인지 춘동이보다 근 이십 년 아래 될 듯 젊어 보이었다. 김산..

임꺽정 9권 (15)

제 5장 1 금교역말 어물전 주인 부자는 청석골 도중과 거의 한속같이 지내는 터인데 젊 은 주인이 주색이 과하여 삼십 미만 젊은 나이에 요사하였다. 손자는 유치의 것 이 두엇 있으나 장남한 자식을 앞세운 늙은 주인의 정경이 가련하기 짝이 없었 다. 청석골 도중에서 통부를 받은 뒤 초종 부비의 한몫을 보태도록 부의를 후히 보내고 망인과 친구이던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와 몇 여러 두령의 몸을 받아서 조상을 하러 나갔었다. 늙은 주인이 황천왕동이를 보고 일을 좀 보아달라고 간 청하여 황천왕동이가 인정에 차마 못한단 말을 못하고 들어와서 꺽정이에게 말 하고 다시 나가려고 하였더니, 서림이가 꺽정이보고 말하기를 일 보아주고 있는 것은 잠시 다녀오는 것과 달라서 자연히 안면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 이라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