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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13) -톨스토이-

13 그 후 3년 동안 네플류도프는 카추샤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장교로 임관된 네플류도프가 부대로 부임하는 길에 고모네 집에 며칠 묵었을 때였으나, 이제 그는 3년 전 한여름을 이 곳에서 지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도 돌보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도 희생 정신이 강한 청년이었으나, 지금의 그는 오직 자신의 향락만 추구하는 속물로 완전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 때는 이 세상이 신비롭게만 생각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기쁨과 감격에 찬 태도로 그 비밀을 풀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은 단순하고 명백해져서, 자신이 몸을 담은 생활 환경에 따라서 결정되는 셈이었다. 그 ..

<R/B> 부활 (12) -톨스토이-

12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는 카추샤였다. 네플류도프와 카추샤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네플류도프가 처음 카추샤를 본 것은 그가 대학 3학년 때, 토지 사유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고모집에서 한 해 여름을 보낼 때였다. 그는 여름 방학이면 언제나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어머니의 광대한 영지에서 보내곤 했었다. 그러나 그 해에는 누이가 결혼을 했고, 어머니도 외국의 온천지로 여행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네플류도프는 꼭 완성해야 할 논문이 있었기 때문에 여름을 고모네 집에서 보내기로 작정했다. 고모네 집은 한적한 시골에 있었으므로 매우 조용했고, 그의 마음을 들뜨게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고모들은 조카이면서 자기들의 상속작인 그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으며 그 역시 ..

<R/B> 부활 (11) -톨스토이-

11 재판장은 기소장 낭독이 끝나자 다른 배석 판사들과 의논한 뒤, '이제는 모든 사실을 마지막 세부까지 소상히 밝혀 내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카르틴킨에게로 몸을 돌렸다. "농민 시몬 카르틴킨!" 왼쪽으로 몸을 굽히고서 그는 입을 열었다. 시몬 카르틴킨은 두 팔을 옆구리에 내리뻗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볼을 계속 실룩거렸다. "피고는 188X년 1월 17일 예브피미야 보치코바,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와 공모하여 상인 스멜리코프의 가방에서 돈을 훔치고, 그 후 비소를 갖고 와 예카테리나 마슬로바를 충동하여 술을 타서 상인 스멜리코프에게 먹이도록 해 그를 치사케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고는 자기 죄를 인정하는가?"하고 재판장은 짐짓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희들은 다만 손님..

<R/B> 부활 (10) -톨스토이-

10 기소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188X년 1월 17일, 마브리타니야 여관에서 쿠르간 출신의 2등 상인인 페라폰트 예밀리야노비치 스멜리코프라는 숙박객이 급사했다. 당시 제 4관구의 경찰의의 감식에 따르면 사인은 알코올성 음료의 과음으로 인한 심장 파열이라고 판정했다. 스멜리코프의 시체는 사후 3일 만에 매장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스멜리코프와 동향인이며 동업자인 상인 티모힌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와 스멜리코프가 죽었을 때와 그 때의 여러 정황을 살피고나서, 그가 가지고 있던 돈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강탈한 목적으로 독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혐의로 재조사를 신청했다. 이 혐의는 예심에서 확인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이 판명되었다. 첫째, 스멜리코프는 죽기 직전 은화로 3800루블을 은행에서 찾았다. 그러나..

<R/B> 부활 (9) -톨스토이-

9 훈시가 끝나자 재판장은 피고인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시몬 카르틴킨, 일어서시오!"하고 말했다. 시몬은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볼의 근육이 더욱 씰룩거렸다. "이름은?" "시몬 페트로프 카르틴킨입니다." 미리 대답하는 연습을 해두었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막히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신분은?" "농민입니다." "출생지의 현과 군은?" "툴라 현, 크라피벤스키 군, 쿠판스카야 면, 보르키 마을입니다." "나이는?" "서른넷, 태어난 해는 18..." "종교는?" "러시아 정교입니다."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직업은?" "마브리타니야 여관의 하인입니다." "전과가 있소?" "전혀 없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까지 저..." "전과가 없단 말이오?" "네, 절대 없습니다. 한 번도 없어..

<R/B> 부활 (8) -톨스토이-

8 재판장은 서류를 한번 쭉 훑어본 후, 정리와 서기에게 두세 가지 질문을 던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피고의 출정을 지시했다. 그러자 곧 가름장 난간 뒤의 문이 열리며 모자를 쓴 두 사람의 헌병이 군도를 빼들고 들어왔다. 그 뒤로 주근깨투성이의 붉은 머리 사내가 먼저 들어오고 잇달아 여자 둘이 들어왔다. 남자는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법정에 들어올 때 엄지손가락을 쑥 밀다시피 하면서 바지 옷솔기에 두손을 갖다 대어 너무 긴 소매가 늘어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는 재판관이나 방청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피고석을 응시하며 긴 의자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리를 남겨 두고 맨 끝자리에 가 앉아, 재판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뭔가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듯 볼의 근육을 실..

<R/B> 부활 (7) -톨스토이-

7 이윽고 마트베이 니키티치가 도착했다. 그리고 목이 길고 깡마른 정리가 배심원실로 들어왔다. 그는 옆걸음질을 치는 습관처럼 아랫입술도 한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었으나 술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직장에서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3달 전에 자기 처를 틈틈이 돌봐 주는 어느 백작 부인의 주선으로 지금의 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오늘날까지 무사히 근무해 온 것을 본이도 기뻐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다 모이셨습니까?" 그는 코안경을 쓰고 안경 너머로 방 안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모인 것 같소." 쾌활한 성격의 상인이 대답했다. "그럼 확인해 봅시다." 정리가 말하고 나서 호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어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할 때마다 코안경을 올려..

<R/B> 부활 (6) -톨스토이-

6 재판장은 일찍부터 재판소에 나와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뚱뚱한 사나이로,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있었으나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간섭하지 않는 주의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스위스 태생인 여자 가정 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가정 교사는 지난 여름 동안 그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남러시아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여행하는 도중이라서 3시에서 6시 사이에 시내의 '이탈리아' 호텔에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작년 여름 별장에서 로맨스를 맺었던 이 빨간 머리의 클라라 바실리예브나를 6시 전에 찾아가려면 오늘의 재판을 될 수 있는 대로 일찌감치 시작해서 얼른 끝내고 싶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R/B> 부활 (5) -톨스토이-

5 네플류도프가 재판소에 출정했을 때 재판소 복도는 벌써부터 슬렁거리고 있었다. 위임장과 서류를 든 수위들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고 있었다.그 중에는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면서 종종걸음으로 숨을 헐떡이며 서성대는 사람도 있었다. 정리와 변호사와 판사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했으며, 청원인과 감시자가 따르지 않은 피고들은 순서를 기다리면서 기운 빠진 태도로 담장 근처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그 근처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지방 재판소 법정은 어딥니까?" 네플류도프가 한 간수에게 물었다. "무슨 법정 말입니까? 민사 법정과 형사 법정이 있습니다만." "나는 배심원이오." "그럼 형사 법정입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두 번째 문입니다." 네플류도프는 그가 가르..

<R/B> 부활 (4) -톨스토이-

4 커피를 다 마시자, 테플류도프는 언제까지 출정해야 하는가를 통지서에서 확인할 겸 공작 영양의 서신에 답장을 쓰려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로 가자면 아틀리에를 지나가야만 했다. 아틀리에엔 그리다 만 그림을 뒤집어 놓은 화가가 세워져 있었으며, 여러 가지 데생도 걸려 있었다. 그가 2년 동안이나 고심하며 그린 유화와, 여러 가지 데생과, 아틀리에 전체의 조망은 그림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는 무력감을 환기시켜 주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너무나 섬세한 자기의 감수성 탓이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어쨌든 그 의식은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7년 전에 그는 자기가 그림에 대해 천부적 소질이 있다고 믿고 군복무를 내동댕이쳐 버렸으며, 예술가적 높은 견지에서 얼마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