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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3.3.1)

-독서 리뷰- -톨스토이 作- ***동우*** 21.07.02 04:25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83-1945) 그의 작품, 그에 관한 글조각들 여럿 올렸거니와, 톨스토이에 관하여 다시 지껄인다는건 진부합니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쓴 그의 마지막 소설 ‘부활(Voskesenie)’을 올립니다. 이 작품에 대한 ‘로망롤랑’의 찬사.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예술적 성서이다. "전쟁과 평화"가 그의 성숙기를 장식하였다면 ‘부활’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톨스토이가 "부활"이외에 아무것도 안 썼다 해도 대작가로서 인정받을 만큼 이 작품의 예술성은 높다" 부활. 서사도 감동적이고 사건과 ..

내 것/잡설들 2024.01.14

혼불 2권 (16)

12 망혼제 무릇 인간이란. 저 광대 무변한 우주 공간과 영원 무궁한 시간 속에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삼라만상 가운데, 가장 미묘 신비한 존재이니. 날 때부터 벌 써 사람마다, 천귀, 천액, 천권, 천파, 천간, 천문, 천복, 천역, 천고, 천인, 천예, 천수를 관장하며 하늘을 운행하는 열두 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다. 사람이 세 상에 출생할 적에 만약 좋은 별을 만나면 일생 부귀공명하고, 불행히 나쁜 별을 만나면 곤고빈천하게 되는데. 이 운명의 길흉을 누구라서 미리 알 수 있으랴. 다 만 그 사람이 난 생,년,월,일시를 기점으로 해서 간지를 짚어 보며, 천리묘법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육갑은, 위로 하늘로 벋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묘사한 천 간,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십간과,..

혼불 2권 (15)

"죽어. 너 죽어." 희재가 흙을 끼얹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가, 흙더미 앞에 쭈그리고 앉 은 붙들이의 엉덩이를 발로 찬다. 다섯 살바기의 조그만 발길질이라지만 약이 올라 차는 것이라 등판까지 울리는데, 붙들이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아 준다. "이라 와서 보랑게 그러네요. 이것 봐요. 내가 새로 맹글어 준당게요. 이께잇 거 천지에 쌔고 쌨는 거이 흙뎅인디. 흙무데기가 무신 황금단지간디요오... 이렁 거 다아 장난으로 집 짓고 노는 거이제, 참말로 집이고 참말로 곡석이간디요...?" "내 놔. 내 꺼 내놔. 내 놔아." 희재는 발길질을 멈추고 두 주먹으로 붙들이의 등을 두드린다. "그렁게 내가 시방 새로 맹글어 주잖어요오. 인자, 그만 우시요. 이께잇 노무 흙 데미, 내가 산에 가서 바지게로 열 ..

혼불 2권 (14)

"너도 잘 알다시피, 이씨 문중 대종가가 그리 평탄한 명맥을 이어온 거 아니지 않느냐. 까딱하다가는 다시 풍비박산 되고 말 것이야. 네 아버님의 심기를 편안 케 해 드리고, 실섭하신 할머님께도 위안을 드릴 수 있는 길이라면 오직, 가산이 느는 일이니라. 언뜻 생각한다면 선비의 집안에 비럭질 같은 해괴한 일이라고 비난하겠지마는 세상 일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우 왕좌왕 혼란에 혼돈이 겹쳐 있는 판국이야. 이럴 때일수록 민첩해야 헌다. 수단 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어야지. 너도 나이 한두 살이 아니다. 이 집안을 이 끌어 갈 종손 된 입장으로 그만한 안목쯤은 네게도 있을 것인즉, 내 말을 허수 로이 듣지 마라. 내가 내 임의로 이 말을 너한테 허는 것이 아니라 집안 어른들 의..

혼불 2권 (13)

율촌댁은 이기채와는 다른 심정으로 말꼬리를 꼬았다. 그네는 아무래도 아까 효 원에게 당한 일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당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수모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어머님이 나를 허수롭게 알으시니 이제 겨우 귀때기에 솜털도 안 벗어 진 것까지 제 시에미를 짚신짝같이 아는 거 아니겠소......?" "이건 또 무슨 봉창 뚫는 소린고? 아니 지금 새삼스럽게 시집살이 하소연을 허 자는 게요, 무어요." 이기채가 역정을 내자, 모처럼 만에 남편 앞에서 속에 응어리졌던 말을 털어놓 으려던 율촌댁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저 오나 가나 나는......) 그네는 웬일인 지 전에 없이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여편네의 소 가지란 어쩔 수가 없구나 싶어 쓴 입맛을 다..

백범일지 (3.3.1)

-독서 리뷰- -김구- ***동우*** 20.10.16 05:30 백범일지(白凡逸志) 여러 판본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라도) 김구라는 거인의 애민애국적 면모에서 배울점 한둘 아니리다만 내 권하는 바 우선은 재미가 있다는겁니다. 그 시대 정치적 지정학적 상황들과 더불어 한 사내의 파란만장한 역정과 조말(朝末)의 풍속세사에 관한 기술들... 소설 이상으로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대략 스물여편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10.19 05:24 타락한 과거 현장, 당시 동학의 정치적상황, 인간관계 풍속 예절, 청나라와 일본, 안진사와 안중근....그 삶의 자리가 이처럼 여실하게 그린 책이 따로 또 있을까요. 백범일지의 가치는 이런 면에서도 출..

내 것/잡설들 2024.01.10

혼불 2권 (12)

"어머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것 하나도 없다. 네가 무얼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게야? 지 금" "어른 말씀에 대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한 일로 친정 부모한테 욕이 돌아 가니 민망하여 그렇습니다." "민망? 민망할 일을 왜 해?"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 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 아닌가요? 놉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에 제 몸을 부릴 때 누가 성심을 다 허겠어요. 눈치보고 꾀 부리고 한눈 파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 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요? 아무리 종리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

혼불 2권 (11)

이기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속에는, 대실에 혼행 갔을 때 일이 잊혀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대실의 허담은 기표의 예언을 무색하 게 하고 말았었다. 기표는 그쪽의 살림형세로 보아 상당한 인사가 있을 것이라 고 했었다. 그리고 시속으로 보아, 그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행 세하는 집안의 혼수에 논 문서가 끼여오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경우에 따 라서는 만만치 않은 재산이 여식을 통하여 시댁으로 건네지기도 하였으니까. 그 것은 무슨 과잉 혼수라든가 허세가 아니라 비록 여식으로 나서 삼종지도와 여필 종부의 법도를 따라, 연한이 차면 자라던 집과 낳아 주신 부모를 떠나 시집으로 가는 자식이지만, 그도 소중한 자식이 분명한 까닭에 재산 있는 부모로서는 아 들에게 그..

혼불 2권 (10)

11 그물과 구름 "어머니, 창씨개명을 하기로 문중에서 결정이 됐습니다." 이기채는 단도직입으로 말을 던진다. "혈손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허울뿐인 성씨만 가지고 있으면 무얼 하 겠습니까? 우선은 급한 불을 끄고, 강모, 강태, 목숨을 보존하고 있자면 언젠가 는 일본이 망허지 않겠습니까? 그놈들이 오래 간다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몇 백 년 몇 천 년을 갈 것인가요? 아이들이 제 근본만 잊지 않고 정신을 놓지만 않는 다면, 성씨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나, 자손이란 한 번 맥이 끊어지면 다 시 잇기는 어려운 법이라, 강물 같은 시세를 어찌 손바닥으로 막아 볼 수가 있 겠습니까. 징병 문제만 해도, 한 번 출병허면 그 목숨은 개나 도야지 값도 못허 는 형편인지라, 기표가 손을 써 보겠다고 했..

혼불 2권 (9)

"매안이 작별이 본대 길어서 아마 오늘 해 지기 전에 정거장까지 닿기는 어려우 실 겝니다. 아예 천천히 이약 이약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별사가 섭섭잖게 나 누고 가시지요." 기표가 농을 섞어 말했다. 그러나 아주 빈말은 아니었다. "다 정 깊은 일이지요. 그래서 귀문에 예부터 체리암이 있지 않겠습니까?" 허담의 응대에 기표가 호오, 놀란다. "체리암을 알고 계십니까?"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체리암은, 동구밖에서 한참 오 리 바깥으로 나간 길목에, 큰 내를 낀 갈림길 어 귀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바위다. 매안 이씨 문중에 손님이 왔을 때, 헤어지기 몹시 서운하여 떠나는 길의 발걸음 동무를 하면서 따라 걷다가, 차마 떨치기 어 려운 소맷자락을 아쉽게 서로 놓고 "자, 이제는 여기서 헤어지자."고 명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