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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 (4) -채만식-

“진작 아니라, 시집오던 날루 났어두 고작 열댓 살밖에 안 되겠수…… 저어 초봉이가 올해 몇 살이지요? 스무 살? 그렇지요” “스물한 살이랍니다!…… 거 키만 엄부렁하니 컸지, 원 미거해서…….” 정주사는 대답을 하면서 탑삭부리 한참봉의 곰방대에다가 방바닥에 놓인 쌈지에서 담배를 재어 붙여 문다. “아이! 나는 꼭 샘이 나서 죽겠어! 다른 집 사남매 오남매보다 더 욕심이 나요!” “정주사 조심허슈. 저 여편네가 저리다가는 댁의 딸애기 훔쳐 오겠수, 흐흐흐흐…….” “허허허…….” “훔쳐 올 수만 있대문야 훔쳐라두 오겠어요…… 정말이지.” “저엉 그러시다면야 못 본 체할 테니 훔쳐 오십시오그려, 허허허.” “호호, 그렇지만 그건 다아 농담의 말씀이구, 내가 어디 좋은 신랑을 하나 골라서 중매를 서드려야겠어..

<R/B> 탁류 (3) -채만식-

그래서 작년 가을에는, 내가 이럴 일이 아니라 차라리 벗어붙이고 노동을 해먹는 게 옳겠다고, 크게 용단을 내어 선창으로 나와서 짐을 져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일껏 용기를 내어 가지고 덤벼든 막벌이 노동도 반나절을 못 하고 작파해 버렸다. 힘이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 동안 배에서 선창으로 퍼올리는 짐을 지다가 거진 죽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 길로 탈이 난 것이, 십여 일이나 갱신 못 하고 앓았다. 집안에서들은, 여느 그저 몸살이거니 하고 걱정은 했어도, 그날 그러한 기막힌 내평이 있었다는 것은 종시 알지 못했다. 그런 뒤로부터 막벌이 노동을 해먹을 생심은 다시는 내지도 못했다. 못 하고 그저 창피하나따나, 벌이야 있으나 없으나, 종시 미두장의 방퉁이꾼으로 ..

<R/B> 탁류 (2) -채만식-

정주사는 검다 희단 말이 없이 모자를 집어 들고 건너편의 중매점 앞으로 간다. 중매점 문 앞에 두엇이나 모여 섰던 하바꾼들은, 정주사의 기색이 하도 암담한 것을 보고, 입때까지 조롱하던 낯꽃을 얼핏 고쳐 갖는다. “담배 있거들랑 한 개 주게!” 정주사는 누구한테라 없이 손을 내밀면서 한데를 바라보고 우두커니 한숨을 내쉰다. 여느때 같으면, “담배 맽겼수” 하고 조롱을 하지 단박에는 안 줄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아무 말도 없이 마코 한 개를 꺼내 준다. 정주사는 담배를 받아 붙여 물고 연기째 길게 한숨을 내뿜으면서 넋을 놓고 먼 하늘을 바 라본다.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훌쭉 빠진 볼은 배가 불러도 시장만 해보인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는 오월의 맑은 날에도 그늘이 진다. 분명찮은 눈을 노상 두고 깜작거..

<R/B> 탁류 (1) -채만식-

탁류(濁流) 채만식 1 인간기념물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 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濟州島)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智異山)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長水)로 진안(鎭安)으로 무주(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永同)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俗離山)의 물까지 받으..

<R/B> 亂中日記 (64, 終) -李舜臣-

무술년 10월 (1598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0월 30일] 맑다. 도독(진린)이 새벽에 제독 유정에게 가서 잠깐 서로 이야기 했다. 10월 초2일 [양력 10월 31일] 맑다. 아침 여섯 시쯤에 진군했는데, 우리 수군이 먼저 나가 정오까지 싸워 적을 많이 죽였다. 사도첨사(황세득)가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이청일도 죽었다. 제포만호 주의수 사량만호 김성옥· 해남현감 류형· 진도군수 선의문·강진현감 송상보가 적탄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다. 10월 초3일 [양력 11월 1일] 맑다. 도독(진린)이 제독 유정의 비밀 서신에 따라 초저녁에 진군하여 자정에 이르기까지 사선 열아홉 척, 호선 스무 여 척에 불을 지르니, 도독의 엎어지고 자빠지는 꼴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골포만호 우수는 적탄에 맞았..

<R/B> 亂中日記 (63) -李舜臣-

무술년 9월 (1598년 9월) 9월 15일 [양력 10월 14일] 맑다. 명나라 도독 진린과 함께 일제히 항해하여 나로도에 이르러서야 잤다. 9월 16일 [양력 10월 15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도독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7일 [양력 10월 16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진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8일 [양력 10월 17일] 맑다. 낮 두 시에 행군하여 방답진(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이르러 잤다. 9월 19일 [양력 10월 18일] 맑다. 아침에 좌수영 앞바다에 옮겨 대니, 눈앞의 전경이 참담하다. 한 밤에 달빛을 타고 하개도(하개도:남해군 남면 대정리 목도?)로 옮겨 대었다가, 채 밝기도 전에 출항했다. 9월 20일 [양력 10월 19일] 맑다. 오전 여덟 시쯤에 유도(여..

<R/B> 亂中日記 (62) -李舜臣-

무술년 1월 (1598년 1월) 1월 초1일 [양력 2월 5일] 맑다. 저녁나절에 비가 잠깐 내렸다. 경상수사·조방장 및 여러 장수들이 다와서 모였다. 1월 초2일 [양력 2월 6일] 맑다.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 제일)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새로 만든 배의 진수식을 했다. 해남현감(류형)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송대립·송득운·김붕만이 각 고을로 나갔다. 진도군수(선의경)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1월 3일 [양력 2월 7일] 맑다. 이언량·송응기 등이 산□□□ (□□□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1월 4일 [양력 2월 8일] 맑다. 무안현감(남언상)에게 곤장을 쳤다. □수사에게 □□했더니, 우수사가 □□□ 왔다.(□□□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날짜 없음) 명나라 계(계김) 유격장..

<R/B> 亂中日記 (61) -李舜臣-

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12월 초1일 [양력 1월 7일] 맑다. 맑고 따뜻했다. 아침에 경상수사 입부 이순신이 진에 왔 다. 나는 배가 아파서 저녁나절에야 수사를 보고, 그와 종일 이야기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12월 2일 [양력 1월 8일] 맑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여 봄날 같다. 영암의 향병장 류장춘이 적을 토벌한 사유를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곤장 쉰 대를 쳤다. 홍산현감 윤영현·김종려·백진남·정수 등이 와서 봤다. 밤 열시쯤에 땀이 배어 젖었다.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12월 3일 [양력 1월 9일] 맑다. 바람이 세게 불렀다. 몸이 불편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2월 4일 [양력 1월 10일] 맑다. 몹시 추웠다. 저녁나절에 김윤명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장흥 교생 기업이 군량..

<R/B> 亂中日記 (60) -李舜臣-

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9일] 비가 내렸다.아침에 얇은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기이한 일이다. 오후 두 시에 비는 개었으나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뱃사람들은 추위에 괴로워하며,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10일]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표류되어 암초에 걸려 깨졌다고 한 말을 들었다. 참으로 통분하다. 병선의 군관 당언량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R/B> 亂中日記 (59) -李舜臣-

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9일] 맑다. 아들 회를 보내서 제 어미를 보고 여러 집안의 생사를 알아 오게 하였다. 심회가 몹시 안달나서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병조의 역꾼이 공문을 가지고 내려 왔는 데,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이미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없다."고 한다. 10월 2일 [양력 11월 10일] 맑다. 아들 회가 집안 사람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배를 타고 올라 갔으나, 잘 갔는지 못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심회가 만 갈래였다. 10월 3일 [양력 11월 11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변산을 거쳐 곧바로 법성포로 되돌아 가는데 바람은 부드러워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