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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권 (22)

처음에 동녘골양반은, 죽은 강수의 넋을 달래고 혼인을 시키는 굿을 해 주자는 동녘골댁의 말에 불같이 화를 냈었다. "미워도 자식이고 고와도 자식 아닌가요. 어떻게, 죽은 놈이라고 무심할 수가 있 단 말이요...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말든, 천금 같은 자식놈이 비명에 죽어서, 천 상으로도 구천으로도 못 가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혼신을, 잘 달래서 제 길로 가 게 해 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 아니겄소? 자다가도 일어나 앉어 생각허면 내 오 만 간장이 녹아 내리고, 억장이 무너져서 잠이 안 오는데..." 나뭇가지에 바람 소리만 지나가도 동녘골댁은 가슴이 시리었다. 가지에 우는 바 람의 회초리 같은 날카로운 소리는, 그대로 그네의 살을 후려치며 에이는 때문 이었다. 어쩌다가,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난만한 시절에..

혼불 2권 (21)

"가문 날이 무덥기는. 강실아, 너 그거 멀었냐?" "아니요." "거진 다 했어?" "예." "그러면 개켜서 밟어 놓고 나랑 같이 나서자." 강실이는 풀 먹인 빨랫감이 엉성하게 일어서는 것을 다듬고만 있을 뿐, 어디를 함께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까 밖에서 어머니와 수천 숙모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무슨 일에나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성품 탓이기 도 했다. 푸우우. 대답 대신 사기대접의 물을 한 모금 머금은 그네는 옷가지 위 에 안개처럼 그 물을 뿜어냈다. 오류골댁도, 숨이 죽은 빨랫감을 차곡차곡 접으 며 옆에서 거들었다. "지푸라기를 엮어서 사모관대 시키고 녹의홍상 입힌다고 그게 참말로 무슨 혼인 이 될까마는, 그리도 죽은 혼신 골수에 맺힌 한도 풀어 주고, 산 사람 가슴에 박 ..

<임꺽정> (3.3.1)

-독서 리뷰- -홍명희 作- ***동우*** 22.09.03 06:38 말씀드린대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의 대하장편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예전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한 10권의 책을 이틀만에 (밤을 새워가면서) 독파할만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아시다시피 '임껵정'은 이라고 회자될만큼 우리 옛 토속어 구사가 뛰어난 소설입니다. 연재에 앞서 '임꺽정'에 등장하는 낱말사전을 올립니다. 소설을 읽다가 낯선 어휘가 나오면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동우*** 22.09.05 06:08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1888년 5월 23일 ~ 1968년 3월 5일)의 장편 대하소설 ‘임꺽정’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업어온 간단한 해설.

내 것/잡설들 2024.01.17

<타나토노트> (3.3.1)

-독서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 作- ***동우*** 22.05.28 12:09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 )’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고 인기있는 친숙한 작가입니다. 배광배(裵光配)라는 한국명이 있을 정도라니까요. 개미 시리즈(개미,개미의 날,개미혁명등)를 시작으로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신, 뇌, 여행의 책, 아버지들의 아버지, 웃음, 나무, 제3인류 등등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거의 모든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었을겁니다, 나타나토노트 (Thanatonautes)는 죽음을 뜻하는 타나토(Thanatos)와 항해자를 뜻하는 노트(Nautes)의 합성어랍니다. ‘저승의 탐험자’ 쯤으로 해석하면 될런지요. 가장 심오한 주제인 죽음, 이 책을 철..

내 것/잡설들 2024.01.17

<작지만 확실한 행복>(3.3.1)

-독서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2.04.18 06:09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1949.1.12.~ )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연재 시작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어휘. 그러나 ‘소확행’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것이 아닙니다. 나름나름 즐기는 소소한 행복 따위는 옛날부터 사람마다 가지고 있었을거니와, ‘저녁이 있는 삶’이라던가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인말)’이라던가 ‘휘게(덴마크어 hygge)’라던가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줄인 말)’라던가 하는 의미도 따지고보면 ‘소확행’과 궤를 같이 하는 개념일겝니다. 이를테면 우리 선조들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던가..

내 것/잡설들 2024.01.17

<아우라지 가는 길> (3.3.1)

-독서 리뷰- -김원일 作- ***동우*** 21.11.20 04:04 김원일 (金源一, 1942 ~ )의 장편 소설 ‘아우라지 가는 길’ 1998년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동안 리딩북에 김원일의 여러 작품을 올린바 있습니다만, 김원일 문학의 색감은 6.25, 분단문학, 실존, 역사, 기억, 이데올로기같은 어휘들로 표상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 ‘아우라지 가는 길’은 그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자폐 청년 마시우의 역정.. 아우라지는 그의 고향이며 그가 꿈꾸는 순수한 세계. 짧고 힘있게 끊어지는 단문으로 그려지고 있는 이 소설. 그러한 문장으로 자폐아로 버림받아 도시를 헤매이는 밑바닥 삶으로부터 그 오염된 것들을 극복하는 주인공 시우의 소박하지만 고귀하게 빛나는 영혼을 여실히 드러내고 ..

내 것/잡설들 2024.01.17

난중일기 (3.3.1)

-독서 리뷰- -이순신- ***동우*** 21.01.01 05:25 이순신의 '난중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젊었을적 문고본(을유문고였던가)으로 읽었던 난중일기. 군더더기없는 문장. 그 때, 그 칼끝같은 리얼리즘에 어린 가슴에도 서늘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세월 흘러 김훈을 만났지요. '칼의 노래' (오래전 리딩북에 올린). 한 인간의 운명.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다하여 군인으로서의 기능적인 삶을 지향할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허무와 남을 향한 연민의 극복. 公께서는 그토록이나 엄청난 고뇌 속에 살다 가셨습니다. 김훈은 이순신의 칼처럼 단호하게 이순신의 내면을 보여주었었지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일단 난중일기를 번역한 노산 이은상의 글을 먼저 올립니다. 이순신의 지극한 순정함으로 엄정하고 지극한 ..

내 것/잡설들 2024.01.17

혼불 2권 (20)

"하늘이 부끄러워... 억장이 무너... 지고 ... 뵐 낯이 없어서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청암부인이 두 손으로 동녘골댁의 손을 잡아 쥐자 그네는 울음에 체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그네의 등을 어루만지며 쓸어 주었다.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말 안해도 내 알겠네. 허나 사람이 한평생을 살자면 좋 은 일 궂은 일이 어찌 뜻대로만 된다든가. 십 리 길만 가자해도, 황소도 만나고, 지렁이도 밟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하네. 인생은 그보다 더 멀고 긴 것이 니 잊어 버리게나." "어쩌다가 그놈이, 어쩌다가 ... 남 않는 일을 제가 왜 ... 남 다르게, 유별나게 ... 어허그흐으." "강수 탓만도 아니야. 이 좁은 노적봉 아래 손바닥만한 터에서, 삼백 ..

혼불 2권 (19)

"어찌 꼭 일 나기 기다리는 사람같이 그렇게 잘라 말허는고?" "감춰 봐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요? 망신스러운 것은 이미 가릴 수가 없게 됐 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게 낫지." "어허어어. 이래서 다 예부터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하고, 샘길에 여아를 내보내 지 마라 경계하지 않았든가. 여자의 목소리에 음기가 자욱한지라. 본디 그 소리 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안되는 법. 진예 탓도 적다고는 못허지." "그런데, 도대체 그것들이 무슨 일을 어느 만큼이나 저질렀길래, 이런 사단이 나 고 말었을까요?" 드디어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머뭇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안채 에서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부인 몇몇이 문안 삼아 청암부인에게 들렀다가 그 대로 앉아 해가 기울도록 일어설 줄 몰랐다. 도중에..

혼불 2권 (18)

"내가 너희들의 아비가 아니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이냐. 아무리 유명을 달리하 였다고 한들 이런 터무니 없는 망언을 하다니. 나는 너희들을 잃은 뒤에 노심초 사 애통하고 한스러워 이제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건만, 너희들은 어느새 아비도 몰라볼 만큼 무정해졌단 말이냐. 이놈들아..."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비정한 아들 들을 향하여 다시 한번 두 팔을 벌렸다. "너는 듣거라." 이번에는 다른 아들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냉랭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우리들이 너와 함께 순한 인연을 짓고 만난 사이라면, 이렇게 하루 아침 하루 저녁에 한꺼번에 죽어 없어지겠느냐. 우리들은 너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으 로 태어난 것이니라." "원수라니, 너희가 나와 무슨 원수를 지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