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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3)

"누나는 다 아시지만 봉학 언니는 활을 잘 쏘구 여기 언니는 칼을 잘 부리는데 나만 아무 재주가 없어서 어머니에게 구박두 많이 맞았더니 꼬챙이 던지기를 익힌 것이 지금은 백 보 이내의 큰 짐생을 맘대루 잡을 추 있소. " "나무 꼬챙이로 어떻게 짐생을 잡나? “ 애기 어머니 말끝에 "나무 꼬챙이로 무슨 짐생을 잡아 새앙쥐나 잡을까. " 백손 어머니가 말깃을 달고 깔깔 웃기까지 하였다. "처음엔 나무 꼬챙이를 가지구 익히다가 나중엔 쇠끝으루 꼬챙이를 치어서 익혔는데 병을 고쳐주신 어른이 조그만 창끝 같은 병장기를 스무개 한벌 갖다주셔서 그뒤는 줄곧 그걸 가지구익 혔어요. " "지금 가졌거든 어디 구경 좀 하세. " 애기 어머니 말에 "보따리에 들었으니 이따 구경시켜 드리지요. " 유복이가 대답하는 것을 백..

임꺽정 4권 (2)

백손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루 끝에 와서 가로 걸터앉았다. 애기 어머니가 그의 걸터앉는 것을 미타히 생각하여 잠깐 눈살을 찡그리고 "어서 이리 올라와서 인사하게. " 하고 이르니 고지식한 백손 어머니는 어떻게 인사할 것을 배워 가지고 올라가려고 걸터앉은 채 "형님, 나도 절하리까? ” 하고 물었다. "누가 자네더러 절하라나" "글쎄, 절을 할지 안 할지 몰라 묻지 않소? “ "요전 이봉학이 왔을 때 인사를 어떻게 했나. 그대로만 하게그려. " "그 아재 왔을 때 무슨 인사했소. 저 아랫방 앞마당에서 그 아재가 허리를 굽신하며 저는 이봉학이올시다, 하기에 나도 허리를 굽신하고 저는 운총이올시다 하니까 형님이 웃 기까지 하지 않았소. " 애기 어머니가 "참말 그랬든가. " 하고 웃으니 백손 어머 니는..

임꺽정 4권 (1)

제 1장 박유복이 1 아침 저녁에 선선한 바람기는 생기었건만 더위가 채 숙지지 아니한 때다. 양 주읍내 임꺽정이의 집에는 반신불수로 누워 지내는 꺽정이의 아비가 더위에 병 화가 더치어 밤낮으로 소리소리 질러서 온 집안이 소요스러웠다. 꺽정이가 집에 있으면 그다지 심하지 아니하련만, 딸과 며느리는 만만하게 여겨서 더하는지 시 중을 잘 들어도 야단을 아니 칠 때가 드물었다.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길이 들지 아니한 생매와 같은 사람이라 당자가 시아비의 야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아니라, 병자 역시 한손을 접는 까닭에 꺽정이의 누이 애기 어머니가 말하자면 야단받이 노릇하느라고 머리가 셀 지경이었다. 이 날도 애기 어머니가 점심상을 들고 병자 방에 들어가니 병자가 말을 하기 전에 혀를 툭툭 차고 나서 ..

임꺽정 3권 (33,完)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김경석을 돌아보며 “영감, 자 어떻소? 내 말이 거짓말이오?”하고 오금박듯이 말하니 김경석이 “ 내가 언제 영감 말씀을 거짓 말씀이라고 합디까?”하고 조금 기를 내어 말하였 다. “영감은 아까 내말을 곧이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디다그려” “나는 영감의 하시는 말씀을 그저 듣고 있었을 뿐이오”하고 남치근과 김경석이 서로 재미없 이 말할 때에 이윤경이 웃으면서 “저 아이의 귀신 같은 활재주를 눈으로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듣는다면 누구나 다 곧이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남치근과 김 경석의 얼굴을 한번 차례로 돌아보고 “세상에서 이 사람이 명궁이다, 저 사람 이 명궁이다 하지만들 저 아이 같은 명궁이야 희한하지 않습니까? 한량을 많이 겪어 보신 두 분 영감은 혹시 달리 보셨는..

임꺽정 3권 (32)

14 이윤경은 왜가 꾀어내려고 꾀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군관 이삼 인과 같이 성 위에 서서 진토 일어나는 곳을 멀리 바라보고 있는 중에 석양 햇빛에 기치가 어렴풋이 보이었다. 군관 중에 눈 밝은 사람 하나가 이윤경의 옆으로 가까이 와 서 “방어사진의 선봉대가 분명합니다. ” 하고 아뢰자 다른 군관이 곧 그 뒤를 이어 “우리가 지금 왜적의 뒤를 엄습하면 성공할 것이 아니오이까? 곧 출전하 도록 지휘합시지요. ” 하고 품하니 이윤경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왜적이 물 러갈 때 뒤에 매복을 남겼기가 쉬우니 아직 동정을 보지. ” 하고 군관의 말을 좇지 아니하였다. “적병이 창황히 물러가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 “교활하기 짝이 없는 왜적이 우리가 뒤에 있는 것을 알면서 그만 생각을 ..

임꺽정 3권 (31)

7 봉학이는 외조모를 따라서 교하 낙하원 근처로 낙향한 뒤에 이삼 년 동안 이 웃 동리 글방에를 다니었으나 부지런한 활장난에 글공부가 뒷전 가서 책한권을 배우자면 예사로 일 년이 걸리었다. 나중에 그 외조모가 외손의 공부가 다른 아 이들만 못한데 애성이 나서 쓸데없이 강미만 없애지 말고 집에서 상일이나 배우 라고 글방에를 보내지 아니하여 봉학이는 한동안 등에 지게도 져보고 손에 호미 도 쥐어보았다. 그러나 상일은 글공부만큼도 성실치 못하였다. 그 외조모가 일시 애성으로 상일을 시키었지 원래 시키고 싶어 한 것이 아닌 까닭으로 봉학이의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아니하였다. 그 외조모는 남의 전장이나마 농권을 가진 까닭에 울력농사로 농사를 지어서 양식하고 남는 것으로 연년이 밭뙈기를 장만하게 되어 사는 ..

임꺽정 3권 (30)

3 꺽정이가 허담의 말을 타고 동구 밖에 나가서 주마 놓고 돌아다니다가 해가 설핏할 때 절로 올라와서 말을 마굿간에 들여매고 말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내 일은 작별이다” 하고 말한즉 말이 꺽정이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건 들거리었다. 꺽정이가 마굿간 앞에서 돌아설 때 말이 구유 너머로 머리를 내밀 어 꺽정이의 머리 동인 수건 끝을 물고 지극지근 잡아당긴 까닭에 꺽정이가 손 을 머리 뒤로 돌리어 수건 끝을 빼앗고 다시 말 앞으로 돌쳐서서 웃으면서 “이 자식, 버릇없는 자식 같으니, 머릿수건을 잡아당기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한 손을 둘러매니 말은 얼른 머리를 한옆으로 피하였다. “맞을까 보아 무 서운 게구나.” 하고 꺽정이가 둘러매던 손으로 말 목을 뚜덕뚜덕해 주면서 “ 작별이 섭섭하냐..

임꺽정 3권 (29)

37 주인이 자리에 앉으면서 덕순을 보고 “무슨 이야기들 하시는데 불쑥 들어와 서 불안스럽습니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아닐세, 관계찮아”하고 흔연히 말 하고 다시 대사를 향하여 “그래 난리가 어디서 날 듯하오?”하고 먼저 묻던 말 을 되거푸 물었다. 대사가 고개를 한옆으로 기울이며 “글쎄요”하고 대답을 밝 히 아니하여 덕순이가 또 재우쳐 물으려고 할 즈음에 주인이 “언제 난리가 난 답니까?”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이 대사 말씀이 난리가 수이 나리라고 해서 난리가 나면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는 말일세”하고 대답하였다. “난리? 난리 나야지요”, “자네도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야 어디 있겠습니까만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가 난리는 한번 나야지요”, “꼬 락서니가 어떻단 말인가..

임꺽정 3권 (28)

33 전배 하인들이 “에라”하며 지나가고, 사인교꾼이 “쉬”하고 어깨를 갈아가 며 사인교를 메고 지나가고, 후배 하인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가는데 괴상스럽게 요강망태를 걸머진 하인이 나귀를 타고 거들거리며 맨 뒤에 지나간다. 덕순이가 행차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하인의 탄 나귀를 가리키며 “저 오려백복 이 내것 아니라구?”하고 말하자 꺽정이가 “아이놈이 저 뒤에 따라오는구먼이 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나귀 뒤에 조금 떨어져서 풀기 없이 따라오는 아이가 곧 덕순의 데리고 오는 아이이다. “아이놈이 못생겨서 나귀를 빼앗긴 모양이군.”“저놈들이 아이라고 만만히 보고 장난친 모양이오.”하고 꺽정이가 곧 일어서서 나귀 탄 자에게로 쫓아가더니 오고가는 말이 두세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여 꺽정이가 눈을 부라..

임꺽정 3권 (27)

30 저녁상을 치운 뒤에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보며 보우는 전고에 드문 요승이라 고 말하고 “그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짐작이 없지 않으실 터이 지?”하고 물으니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덕순이가 얼마동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래, 그자가 제 명에 죽겠소?”하고 다시 물으니, 대 사가 말이 없이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능지처참을 당하겠소?”“글쎄요.”“ 말을 좀 분명히 하시구려”“그까짓 것은 분명히 알아 무엇하시오.”하고 대사 가 말을 자르려고 하는데 꺽정이가 “중놈으로 그만큼 호강하면 이 다음에 제 명에 못 죽어도 좋지요.”하고 말하니 대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보우 다 음날 혹독한 형장 아래에 맞아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지금 호강이 맘에 좋을 것 없으리.”하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