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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

손가가 온 뒤 며칠 동안 에 하루 한번 술대접을 안 받은 날도 없으나, 저녁 한 끼 죽을 안 먹은 날도 없었다. 손가가 내처 묵기 미안하여 남은 사기를 마저 팔고 가는 길에 다시 올까 하고 떠나려고 생각하던 차에 막봉이가 마침 돌아왔다. 막봉이는 엄장과 몸집이 선봉이, 작은봉이보다 배나 크고 둥근 눈과 가로 찢어진 입이 삼봉이와도 달 라서 사형제 중에 가장 거물스러웠다. 나이는 불과 스물하나밖에 안 되었건만 삼십 가까운 손가와 연 상약해 보이었다. 삼사 년 만에 만나는 손가가 막봉이의 더 노창한 것을 보고 인삿말 끝에 "인제 아주 노총각이 되었네그려. " 하고 말하 니 막봉이는 씽긋 웃는 웃음으로 말대답을 대신하였다. 손가가 온 까닭을 대강 아비에게 듣고 알았건만 막봉이는 손가를 보고 "어째 왔소? " ..

임꺽정 5권 (2)

손가 형제가 본래 광주 분원 사람인데 형은 사기를 구울 줄까지 아는 사람이 고, 아우는 사기짐 지고 다니는 도붓장수로 이골난 사람이다. 형제 같이 송도로 이사 오기는 아는 사람의 연줄도 있거니와 장사 자리가 좋을 줄 믿고 온 것인데 송도 와서 수삼 년 장사를 하는 동안에 형제가 다 딸 하나씩 낳아서 식구가 늘 뿐이지 장삿속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여 고향으로 도로 갈까말까 하던 중에 형이 서흥 사기막 사람 하나를 친하여 그 사람의 주선으로 서흥 가서 사기를 굽 게 되어서 아우의 식구까지 끌고 다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형이 죽고 보면 서흥 이사는 파의할 수밖에 없는 사세라 작은 손가가 형수와 의논하고 우선 송 도로 돌아가서 형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작정한 뒤 탑고개 동네에 가서 승교바탕 과 사람을 얻어가..

임꺽정 5권 (1)

제 3장 길막봉이 곽오주가 탑고개 쇠도리깨 도적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을 때 송도 사기장 수 손가 형제가 서흥 사기막으로 이사 가느라고 식구들을 데리고 청석골을 지나 가게 되었다. 손가 형제의 식구가 어른 아이 모두 일곱인데 어른 넷, 아이 셋이 었다. 큰 손가는 다섯 살 먹은 아들을 업고 형제의 안해 두 동서는 각각 자기의 젖먹이 딸들을 업고 작은 손가는 이삿짐을 졌었다. 청석골 골짜기길을 걸어 나 갈 때 두 동서가 가만가만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형님, 후미진 길이 어째 무시무시하오. ” "이런 데니까 대낮에도 도적이 나지. "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무슨 고개에서 난다지요? “ "탑고개 라네. " "우리가 탑고개를 지나가나요? " ”그럼. " "탑고개를 비키고 다른 길로 못 갈까요? " "다른..

임꺽정 4권 (29,完)

어느 날 다 저녁때 오주가 산더미 같은 나뭇짐을 지고 정첨지 집 못미처 있는 우물 옆을 지나오는데 물동이를 내려놓고 섰는 여편네들과 쌀을 씻고 앉았는 여 편네들이 참새같이 지저굴거리던 중에 여편네 하나가 내달아서 “곽서방 마침 잘 오는구려. 여보 나뭇짐 버티어놓고 두루박 좀 건져주오. " 하고 오주를 붙잡 았다. “여보 귀찮소. " “이녁 주인네 집 두루박을 내가 얻어가지고 왔다가 우 물에 빠뜨렸소. 좀 건져내오. " “빠뜨린 사람이 건지구려. " “내가 건져낼 수 있으면 이렇게 청할라구. 여보, 그러지 말고 좀 건져주구려. " “성가시어 못살겠 네. 내가 나뭇짐 갖다 두구 바지랑대 가지구 오리다. " “바지랑대 저기 있소. " 오주가 그 여편네에게 붙잡혀서 나뭇짐을 버티어놓고 바지랑대로 두레박줄을 건지..

임꺽정 4권 (28)

오주가 영문을 목라서 주춤하고 서자, 장모가 쫓아내려와서 삽작 밖으로 같이 나왔다. 부정하다고 집안에 못 들어서게 한 것을 안 뒤에 오주는 밖에 서서 이야기하는데 일기 좋아 장사 잘 지낸 것부터 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어린것 말 좀 할라구 급히 왔소. "하고 장모를 바라보니 “어린것이 어미의 한세상 났던 표적인데. "하고 장모는 손등으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였다. “죽기 전에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이 없더라도 잘 길러야 할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자네가 형세가 있으니 유모를 대나, 어떻게 하나?” “아무리 생각해두 장모가 좀 길러주어야겠소. "“내가 젖도 없이 어떻게 기르나?” “젖을 얻어먹여서라두 길러주시우. 내가 버는 일 년 사경은 모두의 젖값으로 데밀 테요. " “차차 의논해서 좋..

임꺽정 4권 (27)

“말을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있소?”, “우리 그대루 같이 지내지 다른 데 갈 것 무어 있나? 내가 그 자식을 단속해서 이 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니 염려 말구 같이 지내세. ”하고 정첨지는 오주를 달래었다. 오주가 위인이 만만치 않아서 휘어부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힘이 많은데다가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여 오주 하나면 장정 일꾼 몇 사람 폭을 당하는 까닭에 이런 머슴을 놓치 지 않으려고 정첨지는 중언부언 만류하여 놓고 나서 “내가 지금 그 자식을 불 러다가 자네 앞에서 사과시키구 또 장래 그런 일 못하두록 맹세시킴세. ”하고 곧 안에 와 있는 동네 여편네 하나를 불러다가 발매터에 나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일렀다. 오주가 한동안 더 정첨지 방에 앉아 있다가 “난 고만 집에 가 보겠소. ”하고..

임꺽정 4권 (26)

“이눔의 호랑이가 다리 병신이로구나. " “내가 뒷다리를 퉁겨놓았소. " 오주가 나무 위에서 꺽정이 말에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한 칼에 호랑이를 요정내지 않고 하는 꼴을 두고 보았다. 호랑이가 뛰 면 따라 뛰고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면 같이 가만있고 또 호랑이가 대어들면 피 하다가 호랑이가 피하면 대어들었다. 호랑이가 내빼는 것을 장사로 생각하였던 지 산으로 도망질치려고 뒷다리를 끌며 뛰어가니 꺽정이가 얼른 앞질러 막아서 서 서리 같은 칼날을 내둘렀다. 호랑이가 오도가도 못하고 한곳에 주저앉는데 뒷몸을 눕히고 앞몸만 세우고 아주 죽이라는 듯이 눈을 딱감았다. 이 동안에 오 주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반 함통이를 들어다가 호랑이 대가리에 들씌워서 호랑 이가 함통이를 쓰고 한 바탕 곤두를 돌았다. 꺽정이가 이 꼴..

임꺽정 4권 (25)

술상이 굉장하였다. 집에서 잡은 도야지고기와 사냥해온 노루 고기와 벌이해 온 어물로 만든 진안주, 마른안주는 상 둘에 가득 놓이고 새로 뜬 독한 청주는 큰 양푼에 가득하였다. 갱지미 하나가 술잔으로 놓였는데 깊은 술잔 두어 곱절 이 넉넉히 들건마는 큰 그릇으로 마시기 좋아하는 오주 눈에는 너무 작아 보이 었다. 술이 첫순이 끝난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대접 하나 가져오라시 우. " 하고 말하여 계칩아이가 놋대접 하나를 가져오니 오주가 먼저 받아들고 " 이것으루 술을 먹었으면 좋겠소. " 하고 그 대접을 꺽정이 앞에 놓으려고 하였 다. "거기 놓지 말구 술을 뜨게. " "자, 받으시우. " "자네 먼저 먹게. " 오주가 사양 않고 들어 마신 뒤에 다시 떠서 꺽정이를 주니 꺽정이가 한 대접 술을 한..

임꺽정 4권 (24)

오주가 유복이와 형제를 맺은 뒤로 거의 한 장도막 한 번씩 청석골 산속을 들 어다니는데 처음에 오주 오는 것을 진덥지 않게 알던 오가의 식구들도 강가의 풍파를 같이 치른 뒤부터 모두 한집안 식구같이 정다워져서 오주가 올 때쯤 되 면 유복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오가의 식구들이 음식까지 유렴하여 놓고 기다 리었다. 새해 된 뒤에는 오주가 정초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을 먹고 가고 또 보름 전에 와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고 유복이가 양주 꺽정이 집에 가서 칠팔 일 있다 오는 동안에 한 번 와서 다녀갔었다. 그때 와서 말이 계집 하나 생기게 되었으니 생기거든 데리고 오마 하고 갔는데 그 뒤 벌써 두 장도막이 지나도록 다시 오지 아니하렸다. 유복이가 날마다 식전이면 "오늘은 이 자식이 오려나. " 하고 종일 고대..

임꺽정 4권 (23)

과부가 정첨지 집에 와서 몸져 눕는 길로 곧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앓았다. 정첨지는 며느리 시켜 구호를 극진히 하게 하고 과부 누운 아랫방에 여편네 한 둘은 밤낮 떠나지 않도록 하고 사내는 누구든지 범접 못하게 하였다. 정첨지의 며느리가 정첨지보고 "앞으로 과부를 어떻게 하실랍니까? " 하고 의향을 물으니 정첨지는 자기 마음에 작정한 대로 "병만 낫거든 곧 저의 집으루 보내줄 테다. " 하고 말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이 말을 전청으로 듣고 몸이 달아서 구변 있는 동네 늙은이 하나를 중간에 놓고 아비 의향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정첨지 아들 의 청을 받은 늙은이가 정첨지 집에 와서 겉으로는 그저 놀러온 체하고 정첨지 와 같이 담화하는 끝에 과부 말을 끄집어냈다. "그 과부가 병이 났다더니 대단치 나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