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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6)

26 꺽정이가 덕순을 보고 "나는 먼저 갈 터이니 선생님하고 같이 뒤에 오시오. " 말하고 한 걸음 앞서 간 뒤에 대사가 앞을 서고 덕순이가 중간에 서고 아이가 나귀 끌고 뒤에 서서 노량으로 걸어서 양주읍내를 들어왔다. 꺽정이 집에 다 왔 을 때 아이들이 문간에 섰다가 한 아이가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아주머니, 아버지가 갓 쓴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소리를 치니 먼저 들어간 아이보다 키가 작아 보이는 아이가 절름절름 걸어들어가며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먼저 아이의 말끝만 따서 소리를 질렀다. 대사가 덕순을 돌아보며 "먼저 들어간 아이는 꺽정이의 아들이고 뒤에 들어가는 절름발이는 꺽정이의 아우요.“ 하고 그 아이들이 누구인 것을 가르쳐 주니 덕순이는 "꺽정이가 어느 틈에 그런 큰 아들..

임꺽정 3권 (25)

22 보우야 소리 한마디에 휘둥그래진 눈쓸이 바라다보고 돌아다보고 또 치어다보 는 중에 늙은 객승이 보우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내려오라는 군호와 같이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우가 곤두박질을 치듯이 주홍상에서 뛰어내려오며 진둥한둥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 늙은 객승이 보우의 내려오는 것 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니 보우는 달음질로 그 뒤를 쫓아 나갔다. 처음에 놀랐던 여러 중들이 나중에는 궁금한 생각이 나서 쫓아나가 보 려고 한즉 상투바람의 속인이 두 팔을 벌리고 길을 막았다. 앞에 섰던 중 몇 사 람이 굳이 나가려고 하는데 그 속인이 "성가신 것들 다 보겠다. " 하고 소리지르 며 장난하듯이 슬쩍슬쩍 뒤로 떠다미니 그 중들이 짚으로 만든 사람같이 허무하 계 나가자빠지..

임꺽정 3권 (24)

18 경복궁의 큰 화재가 난 뒤에 왕은 대왕대비와 왕대비를 뫼시고 창덕궁으로 이 어하게 되었다. 이어하던 이튿날 왕이 삼정승을 탑전에 불러들여서 경복궁 중수 할 일을 의논하는데 왕이 먼저 입을 열어 "내가 나이가 젊고 덕이 없는 탓으로 조종조 백여 년간 전하여 오는 궁궐을 일조에 태반 불에 태우고 황송한 맘에 침 식이 실로 불안한 고로 하루바삐 중수하려 하니 경들은 어찌 생각하오? “ 하고 정승 들의 의견을 물으니 윤원형이 앞으로 나서서 "지금이라도 곧 중수도감을 앉히고 역사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합네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영 상, 좌상도 의견이 우상과 같소? ” 하고 왕이 심연원과 상진을 차례로 돌아보 고 다시 윤원형을 바라 보며 "그리하자면 도감당상은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겠..

임꺽정 3권 (23)

14 대비가 머리를 동이고 벽을 안고 누웠다가 밀장지 열리는 기척을 알고서 돌아 눕지는 아니하고 "누구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난정이 걸음을 사뿐사뿐 걸어 대비의 발치에가 서서 나직한 목소리로 "난정이올시다. " 하고 고하니 대비가 돌 아누우며 "어째 또 들어왔느냐?" 하고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 "어째 서 또 들어왔느냐니까? “ "말씀 사뢰기 황송합니다만. " 하고 난정이 잠깐 말을 그치고 방글거리다가 "내외 말다툼을 했습니다. " 하고 말하였다. "왜 말다툼은? ” "저녁때 수시가 생겨서 안으로 들여보냈삽기에 두서너 개 맛보았삽더니 마마 께 드리기 전에 먹었다고 지각없다고 야단을 치와요. 그 생각 못한 것이 불민한 일인 줄은 알지요만 하인들 소시에 그만 일을 가지고 야단치는 것이 조..

임꺽정 3권 (22)

11 왕대비와 왕비도 맘대로 쓰지 못하는 내탕고 재물을 보우가 저의 사사 재물과 같이 쓰고 싶은 대로 함부로 쓰니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일이건마는, 대왕대비가 보우의 하는 일은 사사이 모두 신통히만 보는 까닭으로 꾸지람 한 마디가 없었 다. 이런 것은 궁중, 조정의 권세를 한손에 쥐고 흔들던 윤원형으로도 감히 바라 저 못할 일이었다. 윤원형은 제 손에 있는 권세를 찢어 나눠 갈까 하여 젊은 왕 비 심씨의 본곁을 다소 염려하였으나, 심연원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맘을 놓은 뒤에는 다른 염려가 없거니 태평으로 믿고 지내던 중에 의외 중놈 하 나가 궐내에 들어오며 권세가 뿌리로부터 흔들리게 되니 원형은 보우를 미워하 지 않을 수 없었다. 원형이 보우를 내쫓으려고 맘을 먹고 있었으나, 대왕대비의 눈치를 ..

임꺽정 3권 (21)

7 토정이 남명에게서 묵는 동안에 보우가 역적으로 몰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남 명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거처하는 놈이 역적질을 하려고 했다면, 만분 위태 한 일이 있었을 터인데 첫째 대전께서 무사나 하신지? “ 하고 왕의 몸에 변고 나 있지 아니할까 하고 걱정하니 토정은 "보우가 시역을 꾀하였다면 대왕대비께 서 미리 모르셨을리 없을 것인즉 다른 변고면 모르되 그런 변고는 당저에 없을 것일세.” 하고 왕의 몸이 무사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진적한 서울 소식을 몰 라서 궁금히 생각하기는 남명이나 토정이 다름이 없었다. 대체 보우의 역모하였 다는 초문이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니나 일이 소문과는 같지 아니하였다. 처사별 과 같이 한구석에 숨어 있는 조남명과 상서별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이토정의 이..

임꺽정 3권 (20)

3 대왕대비가 보우의 말을 믿는 품이 감나무에 배가 열린다 하여도 의심하지 않 고, 보우의 말을 좇는 품이 소금섬을 물로 끌라 하여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대왕대비가 보우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체한 불법을 진작하려고 하여 선종, 교 종의 구별을 세우고 양종 선과를 설시하기로 작정하였다. 대왕대비가 왕을 데리 고 정전에 전좌하고 영의정 심연원과 좌의정 상진과 및 우의정 윤원형을 함께 불러들이어 양종 구별할 일과 선과 보일 일을 문의하니 심연원은 "선종, 교종의 구별은 전에도 있던 일이올시다. " 하고 간단하게 말씀을 아뢰고 상진은 "계행 있는 중은 선과에 잘 응시하지 않을 듯하외다. " 하고 말씀하다가 대비가 "선과 에 응시하면 계행이 깨어지나? 나는 계행 있는 중을 많이 뽑게 할 작정이니 대 신의 말이..

임꺽정 3권 (19)

13 조식은 이름 높은 큰 선비라 나라에서 은일로 불러서 단성현감을 제수하였더 니, 권세 있는 윤원형이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병들리는 때에 사환에 종사할 맘이 없어 조식은 곧 상소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조식의 사직 상소 에 시폐까지 말하였는데 그중에 "자전은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선왕의 한 아 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 천재를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 갈래 인심을 어찌 다 수 습하시렵니까? 나라일이 그릇되고 백성이 병들게 되는 것이 근원이 어디 있는 것을 밝히 살펴서 맹렬하게 고치지 아니하면 나라가 장차 어찌될지 모릅니다. 흰 복색과 슬픈 노래가 늘어 가는 것도 심상한 징조가 아닌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위태위태한 말까지 베풀어 놓았었다. 이때 왕은 나이 십팔구 세라 신하들 의 말을 들..

임꺽정 3권 (18)

9 명률 조문에 비추어 보면 부모, 조부모가 자손을 죽인 죄는 예사 살인과 달라 서 형벌이 중하지는 아니하나, 역시 인명에 관한 죄인 이상에 아무리 경하게 치 죄한다 하더라도 장일백은 의당향사일 것이고, 또 재상은 소민과 달라서 함부로 치죄하지 못한다 하더라초 법관이 논죄하여 해당한 견전을 물을 일이지마는, 원 형은 두리손을 죽이고 법관에게 논죄를 당한 일이 없었다. 법관이 원형의 죄를 몰랐 다느니보다도 원형을 논죄할 법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도 여 차 일이다. 원형의 하인이 외방에 나서 살인하는 일이 있어도 시친이 하인의 기 세에 눌리어서 관하지 못하고, 수령이 원형의 세력을 겁내서 살옥을 일으키지 못하는 판이며, 또 살인과 같은 죽을 죄를 지은 범이라도 원형의 집에 들어가 있게만 되..

임꺽정 3권 (17)

5 원형의 안해 김씨는 원형에게 소박을 받아서 명색만 내외이지 사실로 남과 같 이 지내었다. 원형이는 난정의 집에서 거처하고 김씨에게 오지 아니하였다. 김씨 가 정실이지마는 원형의 식사 한 때와 옷 뒤 하나를 아랑곳하지 못하므로 정실 이 정실 같지 아니하고 김씨의 집이 큰집이지마는 원형이가 지차이니 제사를 받 들 까닭이 없고 원형이가 사랑을 쓰지 아니하니 손님을 대접할 까닭이 없으므로 큰집이 큰집 같지 아니하였다. 난정이가 원형의 집안 일권을 손에 잡고 휘두르 나 그러나 나라에서 내리는 정부인이니 정경부인이니 하는 부인 직첩은 김씨에 게도 내리고 난정이가 안에섯님으로 마마님 소리밖에 듣지 못하니 이것이 난정 의 맘에 부족하였다. 난정이 골이 날 때는 "제가 무슨 턱에 정경부인인고. " 하 고 김씨를 귀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