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795

혼불 3권 (49)

"내 말이. 그렇게 그게 요상타고. 어뜬 것은 한펭상을 부레 먹고 또 그거이 나 를 멕에 살리고잉, 어뜬 것은 그렇게 써 먹능 건 고사허고 달려 있도 안허냐고. 긍게 그 눈구녁허고는 무신 웬수 갚을 악연을 지었등게비지. 당최 그 몸뗑이에 는 달려 있고 싶도 안헌." "아이고, 안 달린 것으로 웬수 다 갚었그만 그리여, 그런다먼." "그렇게, 작고 크고, 잘 났고 못 났고 무신 원망을 말어야 히여. 그것다 지가 진 인옌이 모다 뫼아 갖꼬 사대육신 생게 났을 거잉게." "사주 팔짜 낯바닥도 그렁 거이나 똑같겄그마잉." "아이고오, 내 팔짜야아." 한숨을 쉬던 서운이 할미 곁에서 어린 서운이는 조작조작 걸어 다니며 놀고, 나이 젊은 서운이네는 시어미한테서 물려받은 방물 가방을 등에 지고 나섰다. 그 서운이도 ..

혼불 3권 (48)

그 겉옷 밑에는 여전히 오래 오랜 세월 동안 묵고, 가라앉고, 엉겨붙은 관습이 소금 버캐 켜켜이 자욱한 몸뚱이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새로 난 철도가 마을 뒷산 고리봉의 저 뒤쪽으로 벋어 지나가듯이, 개화 개명이라는 새 문물은 마을 바깥 저 뒷등허리로 저희끼리 지나가고 있을 뿐. 이 마을 안 고리배미는 예전부터 나 있는 길을 그대로 끼고 앉아, 변함없이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 모양 어제 살던 대로 오늘도 살고 있는 것이다. 양반들이야 민촌이라고 웃든지 말든지 여기서는 여기서대로 그런 것을 가리면 서, 중로는 체신과 실속을 챙기려 하였고, 상민은 자신들이 쇠백정 도한이, 고기 잡는 어한이, 소금 굽는 염한이에 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하 였다. 이는 삼한이라고 하여 몹시 천대받는 사..

혼불 3권 (47)

9 고리배미 만일 낫을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날카로운 날끝이 노적봉 기슭의 매안이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참을 걸어와 낫의 모가지가 기역자로 구부러지는 지점이 새로 생긴 정거장이며, 그 목이 낫자루에 박히는 곳쯤이 무산 밑의 근심바우 거 멍굴이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와 맨 꽁지 부분 손 잡는 데에 이르면, 고리봉 언저리 민촌 마을 고리배미가 된다. 이름 그대로 둥그런 고리의 등허리같이 생긴 산이 모난 데 없이 수굿하게 앉 아서 좌우에 나직나직한 능선을 그으며 마을을 보듬고 있는 이곳에는, 어림잡아 백이십여 호가 넘는 집들이 집촌을 이루고 있었다. 산중도 아니요, 들도 아닌 비산비야의 난양지지, 따뜻하고 양지 바른 터에 처 음으로 들어온 한 헌조, 어질고 덕망 있어 이름이 높이 드러난 할아버지의 자손..

혼불 3권 (46)

대개 굿은 그 당사자 집에 가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부득이 무슨 사정이 있어 여의치 않을 때는 당골네 집에서 대신하는 경우도 있어서, 밤이면 어둠의 갈피를 헤집어 에이는 시누대 피리 소리에 장구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데 데 데 뎅 지이 징 지리 징 지잉 징 놋쇠 징소리가 거멍굴의 검은 하늘 깊은 가슴을, 말로는 다 못할 애원으로 두 드렸다. 그럴 때 무산은 달조차 토해 내지 못하고 오직 흐느끼듯 캄캄하였다. 이 무산과 저 근심바우 사이에 거진 한가운데쯤 되는 곳이 바로 옹구네와 평 순네, 그리고 공배네, 또 조금 떨어진 동산 기슭에 춘복이가 살고 있었다. 이곳은 길가였다. 어느 옛날부터 있어 온 것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다져 놓은 소롯길이 제법 탄 탄한 이 길은, 북쪽에서 벋어와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혼불(3권)

혼불 3권 1암운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며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언마나(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자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언마는 제반미요 언마는 씨앗이며 도조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계 돈 장리 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놀양이나 여투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줄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구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

혼불(2권)

혼불 2권 9 베틀가 인월댁은 드디어 북을 놓는다. 그리고 허리를 편다. 두두둑, 허리에서 잔뼈 부 서지는 소리가 나며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진다. 그네는,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어깨를 힘없이 몇 번 두드려 보다가 허리를 받치고 있는 부테의 끈을 말코에서 벗긴다. 뒷목도 뻣뻣하고 다리도 나무토막처럼 굳어져서 이미 감각이 없는데, 마 치 그네가 베틀에서 내려앉기를 재촉이라도 하려는 듯 닭이 홰를 친다. 벌써 세 홰째 우는 소리가 새벽을 흔든다. 용두머리 위에 놓인 바늘귀만한 등잔불이 닭 이 홰치는 소리에 놀라 까무러치더니, 이윽고 다시 빛을 찾는다. 방바닥으로 내려 앉은 인월댁은 그제서야 허릿골이 빠지는 것처럼 저려와 그대로 무너지듯이 드 러누워 버렸다. 불기 없는 바닥이라 등이 서늘하다. 비록 여름이지만..

혼불 3권 (45)

그래서 늘 칼을 갈고, 날을 벼리고, 못 쓰게 된 쇠는 불에 녹여서 새것으로 만 드는 대장간이 꼭 있어야 한다. 늘 쓰는 그 많은 연장을 일일이 남의 손 빌려 할 수도 없고, 집안에 대장장이가 느닷없이 날 리도 없어서, 집 옆에다 조그맣게 성냥간을 하나 만들어 그들은 제 필요한 것은 제가 손질하고 또 만들어 썼다. 그저 오두막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시늉은 갖춘 성냥간은, 저 위에 할 아비 때부터 있던 것인데 이제는, 사정이 있어 이곳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대장 장이 금생이한테 아예 성냥일은 맡겨 버린 것이다. 불에 쇠를 불리는 것을 '성냥한다'고 하니, 대장장이가 쇠를 다루어 대장일 하 는 것을 '성냥일'이라 하는데, 이 일 역시 팔천 중의 하나였다. 원래 백정은 신분을 바꾸어 평민이 되거나 생업을 ..

혼불 3권 (44)

머리가 쉬어빠진 회색으로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된 이날 이때까지 그네는 세 상 누구로부터 공대를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거꾸로 달금이네는, 아무리 상민한테라도 말을 놓지 못한다. 그러니 매안 문중 어른들한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어린 아이들한테 라도 그네는 반드시 말을 바쳐서 했다. 그것이 법이었다. 마님, 아씨, 새아씨, 작은아씨, 애기씨 하고 평생 동안 양반의 부인과 따님들에 게 바쳐 부른 그 호칭들은, 달금이네 그 자신은 언제 지나가는 미친년한테라도 들어 본 일이 없었으며, 언감생심 그 말들을 넘본 일도 없었다. 매안에 올라가 고기를 내놓은 집에서는 셈만 하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쓰일 소용에 따라서, 정성껏 썰고, 뜨고, 저미고, 다지는 일까지 다 해 주었다. "아씨들이 이런 일 허시..

혼불 3권 (43)

깊은 산간의 벽지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 만한 한 뙈기 땅을 구할 길이 없으 니 결국 불을 놓아 일구는 화전민 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반대로 산이 전 혀 없는 허허 벌판은 또 땔나무를 얻기에 힘이 들 것이므로, 산과 들이 알맞게 어우러진 지형이 살기에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 살아 마을을 이루는데 제일 좋은 명당은, 비산비야, 산 중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 곳이라야 인물이 나고, 마을이 번성하며, 오래 오래 자손이 이어져 향화 가 끊이지 않는다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런 곳이 피난에 가장 적지라는 말인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매안의 지형이 바로 비산비야였다. 노적봉의 영기가 벋어 내린 발등에 터를 잡아서 그 발 아래 ..

혼불 3권 (42)

매안 마을이 있는 사매면은, 남원읍에 맞닿아 인접한 곳으로, 군의 복판에서 서북 간방으로 약간 빗기어 앉은 이 면에 이어, 서쪽 손으로부터 복쪽 머리를 돌아 동쪽으로 띠를 이루며 거대한 삼태기처럼 주위를 에워싼, 대강면과 대산면, 그리고 덕과, 보절, 산동, 이백, 주천, 송동, 수지 같은 면들이 다 이 구릉지대에 속했다. 이 준평언의 구릉지대 안에는 크고 작은 들이 산재하여, 주위 경관을 데불고 농사짓기 마땅한 곳도 있고, 척박한 토질에 손가락이 갈퀴처럼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이런 지세를 높고 크게 에워싸고 있는 소백, 마이, 부흥을 두고 사람들은 삼대 산맥이라 하였다. 이 산맥들은 저마다 한 영봉에 그 정기를 갊아 넣었으니, 동쪽 의 소백산맥은 지리산 묘경을 이루었고, 성수산맥이라고도 불리는 북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