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유명이 달라 명부의 그림자를 좇아갈 수 없었으나, 이제 죽어 가벼운 혼백이 되었는데도 바로 가서 만나지는 못하고, 아직도 더 기다릴 일 남아서, 가슴에 맺힌 애를 다 삭히고 썩이어 온전히 씻어 내고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사람. 이승에서 만났던 단 사흘의 인연으로 한세상을 다하여, 오직 그가 남긴 시간을 살고, 죽어서도 한 삼 년은 더 기다려야 갈 수 있는 이 사람의 그 무엇이 그토록 컸던 것일까. 청암부인은 이승을 벗어 놓고 저승으로 가면서, 이 어린 신랑 준의가 써서 보낸 달필의 혼서지를 신발로 만들어 신고 갔다. 時維孟春(시유맹춘) 尊體百福(존체백복) 僕之長子俊儀(복지장자준의) 年旣長成(연기장성) 未有沆麗伏蒙(미유항려복몽) 尊玆(존자) 許以(허이) 令愛(영애) 항室(항실) 玆有先人之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