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무문이라 하여,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 남편과 아내같이 그 혈연이 지극히 가까운 사이에는 제문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몸과 저 몸을 구분할 수없이 한 몸으로 절실한 이 사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궁천지통을 당하여, 찢기우고 무너지는 설움으로 애곡도 겨운데, 어느 하가에 붓 들고 먹 갈아서 심신을 가다듬고 문장을 갖추어 제문을 지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리라. 그만큼 글이란, 몸과 마음이 침착 안정, 옷깃을 여민 다음에야 씌어지는 것이었으니, 굳이 상중이 아니어도 반은 앉고 반은 서서 건 공중에 뜬 손으로 봉두난발 흩어진 머릿결을 거꾸로 쏟으면서는 쓸 수 없는 것이 글이었다. 하물며, 앉으면 앉는다, 서면 선다는 말을 듣기 쉬운 사돈댁에 보내는 내간 간찰이랴. 같은 자식, 같은 형제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