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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64, 終) -李舜臣-

무술년 10월 (1598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0월 30일] 맑다. 도독(진린)이 새벽에 제독 유정에게 가서 잠깐 서로 이야기 했다. 10월 초2일 [양력 10월 31일] 맑다. 아침 여섯 시쯤에 진군했는데, 우리 수군이 먼저 나가 정오까지 싸워 적을 많이 죽였다. 사도첨사(황세득)가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이청일도 죽었다. 제포만호 주의수 사량만호 김성옥· 해남현감 류형· 진도군수 선의문·강진현감 송상보가 적탄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다. 10월 초3일 [양력 11월 1일] 맑다. 도독(진린)이 제독 유정의 비밀 서신에 따라 초저녁에 진군하여 자정에 이르기까지 사선 열아홉 척, 호선 스무 여 척에 불을 지르니, 도독의 엎어지고 자빠지는 꼴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골포만호 우수는 적탄에 맞았..

<R/B> 亂中日記 (63) -李舜臣-

무술년 9월 (1598년 9월) 9월 15일 [양력 10월 14일] 맑다. 명나라 도독 진린과 함께 일제히 항해하여 나로도에 이르러서야 잤다. 9월 16일 [양력 10월 15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도독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7일 [양력 10월 16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진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8일 [양력 10월 17일] 맑다. 낮 두 시에 행군하여 방답진(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이르러 잤다. 9월 19일 [양력 10월 18일] 맑다. 아침에 좌수영 앞바다에 옮겨 대니, 눈앞의 전경이 참담하다. 한 밤에 달빛을 타고 하개도(하개도:남해군 남면 대정리 목도?)로 옮겨 대었다가, 채 밝기도 전에 출항했다. 9월 20일 [양력 10월 19일] 맑다. 오전 여덟 시쯤에 유도(여..

<R/B> 亂中日記 (62) -李舜臣-

무술년 1월 (1598년 1월) 1월 초1일 [양력 2월 5일] 맑다. 저녁나절에 비가 잠깐 내렸다. 경상수사·조방장 및 여러 장수들이 다와서 모였다. 1월 초2일 [양력 2월 6일] 맑다.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 제일)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새로 만든 배의 진수식을 했다. 해남현감(류형)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송대립·송득운·김붕만이 각 고을로 나갔다. 진도군수(선의경)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1월 3일 [양력 2월 7일] 맑다. 이언량·송응기 등이 산□□□ (□□□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1월 4일 [양력 2월 8일] 맑다. 무안현감(남언상)에게 곤장을 쳤다. □수사에게 □□했더니, 우수사가 □□□ 왔다.(□□□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날짜 없음) 명나라 계(계김) 유격장..

<R/B> 亂中日記 (61) -李舜臣-

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12월 초1일 [양력 1월 7일] 맑다. 맑고 따뜻했다. 아침에 경상수사 입부 이순신이 진에 왔 다. 나는 배가 아파서 저녁나절에야 수사를 보고, 그와 종일 이야기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12월 2일 [양력 1월 8일] 맑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여 봄날 같다. 영암의 향병장 류장춘이 적을 토벌한 사유를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곤장 쉰 대를 쳤다. 홍산현감 윤영현·김종려·백진남·정수 등이 와서 봤다. 밤 열시쯤에 땀이 배어 젖었다.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12월 3일 [양력 1월 9일] 맑다. 바람이 세게 불렀다. 몸이 불편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2월 4일 [양력 1월 10일] 맑다. 몹시 추웠다. 저녁나절에 김윤명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장흥 교생 기업이 군량..

<R/B> 亂中日記 (60) -李舜臣-

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9일] 비가 내렸다.아침에 얇은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기이한 일이다. 오후 두 시에 비는 개었으나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뱃사람들은 추위에 괴로워하며,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10일]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표류되어 암초에 걸려 깨졌다고 한 말을 들었다. 참으로 통분하다. 병선의 군관 당언량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R/B> 亂中日記 (59) -李舜臣-

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9일] 맑다. 아들 회를 보내서 제 어미를 보고 여러 집안의 생사를 알아 오게 하였다. 심회가 몹시 안달나서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병조의 역꾼이 공문을 가지고 내려 왔는 데,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이미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없다."고 한다. 10월 2일 [양력 11월 10일] 맑다. 아들 회가 집안 사람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배를 타고 올라 갔으나, 잘 갔는지 못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심회가 만 갈래였다. 10월 3일 [양력 11월 11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변산을 거쳐 곧바로 법성포로 되돌아 가는데 바람은 부드러워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

<R/B> 亂中日記 (58) -李舜臣-

정유년 9월 (1597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11일] 맑다.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렀다. 나는 내려가 벽파정위에 앉았는데, 점세가 탐라에서 나와서 소 다섯 마리를 싣고 와서 바쳤다. 9월 2일 [양력 10월 12일] 맑다. 오늘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이 도망갔다. 9월 3일 [양력 10월 13일] 아침에 맑았다가 저녁에 비가 뿌렸다. 밤에는 된바람이 불었다. 봉창아래에서 머리를 웅크리고 있으니 그 심사가 어떠하랴! 9월 4일 [양력 10월 14일] 맑은데,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배가 가만히 있지 못해서 각 배들을 겨우 보전했다. 천행이다. 9월 5일 [양력 10월 15일]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각 배를 서로 보전할 수가 없었다. 9월 6일 [양력 10월 16일] 바람은 조금 자는 듯 했으나..

<R/B> 亂中日記 (57) -李舜臣-

정유년 8월 (1597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11일] 큰비가 와서 물이 넘쳤다. 저녁나절에 소촌찰방 이시경이 와서 봤다. 조신옥·홍대방 등이 와서 봤다. 8월 초2일 [양력 9월 12일] 잠시 개었다.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8월 3일 [양력 9월 13일]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뜻밖에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명령은 곧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숙배를 한 뒤에 다만 받들어 받았다는 글월을 써서 봉하고, 곧 떠나 두치로 가는 길로 곧 바로 갔다. 초저녁에 행보역(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이르러 말을 쉬고, 한밤 12시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 새려했다. 남해현령 박대남은 길을 ..

<R/B> 亂中日記 (56) -李舜臣-

정유년 7월 (1597년 7월) 7월 초1일 [양력 8월 13일] 새벽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다. 명나라 사람 세 명이 왔다가 부산으로 간다고 했다. 송대립과 송득운이 함께 왔다. 안각도 와서 봤다. 저녁에 서철 및 방덕수와 그 아들이 와서 잤다. 이 날 밤 가을 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슬프고 그리움을 어찌하랴! 그대로 송득운은 원수의 진에 갔다가 왔는데, 종사관 황여일이 큰 냇가에서 피리를 불렀다고 하니 놀랍고 놀랄 일이다. 오늘은 인종의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7월 2일 [양력 8월 14일] 맑다. 아침에 변덕수가 돌아왔다. 저녁나절에 신제운과 평해에 사는 정인서가 종사관의 심부름으로 문안하러 여기 왔다. 오늘이 곧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복을 입고 있으니 사람의 일이 어찌..

<R/B> 亂中日記 (55) -李舜臣-

정유년 6월 (1597년 6월) 6월 초1일 [양력 7월 14일] 비가 내렸다. 일찍 떠나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었다. 저물녁에 단성땅과 진주 접경지역에 있는 박호원이라는 농사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기꺼이 접대하기는 하나 잠잘 방이 좋지 못하여 겨우 겨우 밤을 지냈 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유둔 하나, 장지 둘, 백미 하나, 참 깨 다섯, 들깨 셋, 꿀 다섯, 소금 다섯과 미지 다섯은 모두 하동에서 보낸 것이다. 6월 2일 [양력 7월 15일] 비오다 개이다 한다. 일찍 떠나 단계 시냇가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삼가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산성으로 이미 가버려 빈 관사에서 잤다. 고을 심부름꾼이 밥을 지어 먹어라고 한 것을 먹지 말라고 종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