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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3)

"호랭이를 만나거든 아예 혼자 나서지 말아. 아무쪼록 조심해. 매사에 조심하면 낭패가 없는 법이야. " "녜, 조심할테니 염려 마세요. " 천왕동이가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장청으로 들어갈 때 장인 장모가 다 조심하라고 신신부탁을 하는데 안해만은 말 한마디 없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에 붙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는 천왕동이를 손짓하여 불렀다. 천왕동이가 방문 앞에 와서 "왜? " 하고 물으니 옥련이는 말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심 해요. " 하고 당부하였다, 천왕동이가 웃으면서 “호랭이에게 물려가지 않을 테니 염려 말아. " 대답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안해의 은근한 당부가 마음에 좋아서 장청에를 다 오도록 혼자서 싱글벙글하였다. 장교 열 사람이 떼를 지어 새남으로 몰려나갔다. 열 ..

임꺽정 5권 (22)

제 5장 배돌석이 1 봉산읍에서 황주읍까지 칠십 리에 거의 오십 리는 산골길인데 중란에 동선령 이 있고 새남이 있으니 동선령은 봉산읍에서 삼십 리요, 새남은 황주읍에서 삼 십 리다. 새남 남쪽에서 서남쪽으로 벌려 있는 한철산과 발양산은 봉산 땅이요, 북쪽으로 더 들어가는 무인지경 산골은 황주땅이요, 동쪽에 있는 삼봉산과 서쪽 에 있는 정방산은 모두 두 골의 접경이다. 새남 근방에 호랑이 나다닌다는 소문 이 있던 중에 황주읍내 사람 하나가 봉산읍내 볼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새남 아래서 대낮에 호환을 당하였다. 그 사람의 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안 해가 있어서 이틀 사흘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마침내 호환에 간 것을 알고 두 고부가 다같이 죽으려고 날뛰는 끝에 그 어머니는 상성이 다 되었다. 그..

임꺽정 5권 (21)

양주 꺽정이 집에서는 천왕동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궁금히들 여 기던 차인데 의외에 봉산 가서 혼인 정하고 온 이야기를 듣고 꺽정이는 "내 근 심 하나가 덜린 폭이다. "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백손 어머니는 "우리 천왕동이 도 장가를 들 날이 있네. " 하고 펄펄 뛰다시피 좋아하고 애기 어머니는 "봉산 꾀꼬리가 머리 곱게 빗구 황도령에게로 시집을 오면 양주 꾀꼬리가 서운하겠네. " 하고 조롱할 말을 잊지 아니하였다. "양주 꾀꼬리는 누구요? " "양주 죄꼬리는 뒤껼 느티나무에서 울던 꾀꼬리지, 누구는 다 무어야. " "나는 양주 꾀꼬리두 사 람이라구. " 천왕동이와 애기 어머니가 실없은 말을 주고받을 때 꺽정이가 옆에 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구 대사 치를 의논이나 하지. " 하고 나무라듯..

임꺽정 5권 (20)

"장모는 본래 초례 지낸 뒤에 상면하는 법이지만 사위를 못 봐서 성화하는 사람이라 우선 속시원하라구 상면을 시키네. 자네두 아냇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보아서 맘에 궁금할 테지. 궁금치 않게 보여줌세. " 이방이 다시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가 가서 건넌방 문을 열어놓았다. 처녀가 아랫목 방문 앞에 앉았는데 맞은 편을 향하고 앉아서 뒷모양만 보이었다. "이 편으루 돌아앉아라. " "아비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얼른 돌아앉아라. " 처녀가 조금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바루 앉아라. " "어서 바루 앉아. " 옆 모양이 보이었다. 처녀가 다시 몸을 움직여서 이편을 향하고 앉았다. 그러나 고개를 깊이 숙이어서 가리마가 바로 보일 뿐이었다. "병신성스럽다. 고개를 들어라. " "백년해로할 ..

임꺽정 5권 (19)

"그러구 끝이 났네그려. 잘되었네. 아주 잘되었네. " 이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 던 손가가 “첫날 잘 치른 사람은 전에두 더러 있었답디다. 장기를 잘 두니까 내일은 걱정없지만 끝날이 아무래두 탈이오. 남의 집 다락 세간 그중에 집안 사 람두 못 보게 잠가놓은 궤짝 속에 든 물건을 무슨 수루 알아낸담. " 하고 말하니 객주 주인은 ”내일두 쉽지 않소. 장기란 게 비기기가 쉽다는데 꼭 이겨야지 비 겨두 못쓴다우. 총각이 아무리 장기를 잘 두더래두 국수장기를 이기기가 어디 쉽소. " 하고 손가 말에 운을 달고 오가 마누라가 "하늘이 정해 놓은 연분이면 절로 다 되겠지. “ 하고 말하니 유복이는 "암 그렇지요. " 하고 오가 마누라 말 에 운을 달았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우리가 내일 약수산 약물을 먹..

임꺽정 5권 (18)

이방이 방에 누웠다가 대청에 나와 앉으며 다른 사령을 불러서 밖에서 떠드는 놈들을 잡아들이라고 일렀다. 나간 사령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서 발명하여 주려고 "장난들 하는데 목소리가 좀 커졌답니다. " 하고 말하니 이방이 전 같으면 "함부루 떠드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담에는 조심들 해라. " 하고 약간 꾸짖고 말 것인데 "이놈들아, 아무데서나 함부루 떠드니 너놈들의 세상이란 말이냐! "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사령과 관노가 벌갈아 가며 "잘못했습니다. " 하고 비는 것을 이방은 “너놈들을 말루만 일러서 못쓰겠다. 좀 맞아봐라. " 하고 곧 다른 사령을 시켜서 둘을 끌어 엎어놓고 매를 십여 개씩 때려 내쳤다. 이방이 종일 질청에서 큰소리 잔소리 하다가 문루 위에서 폐문하는 삼현육각 소리가 날 때 집에를..

임꺽정 5권 (17)

유숙하는 집에 와서 저녁밥들을 먹을 때 유복이가 백가의 집 사위 고르는 이야기를 오가 마누라에게 들려주니 오가 마누라는 대번에 "딸을 얼마나 잘 두었기에 사위를 그렇게 굉장하게 고른담. 내가 읍내 가거든 한번 가보아야지. " 하고 말하였다. "색시야 출중하겠지만 선 한번 보는 것도 좋지요. " "선이라니 누가 그 색시에게. " 오가의 마누라가 말을 하다가 중동을 무이고 갑자기 말끝을 바꾸어서 "옳지, 황도령이 생각이 있군. " 하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천왕동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장기를 두어보러 간다구는 했지만 취재 보이러 간다구는 한 일이 없소. " 천왕동이가 발명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발명할 게 무엇 있나.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면 좋지. " 하고 말하였다. "그걸 누가 싫다우. 공연한 창피를 ..

임꺽정 5권 (16)

"읍내 갈라우. " "읍내는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약물을 더 먹어야 할 사람이 읍 내를 같이 갈 수 있소. " "약물을 하루 두서너 차례씩 먹어야 맛인가. 식전에 한 차례 먹구 같이 가세. " "그래서 속병이 아주 낫지 못하면 내가 원망 듣게. " "누 가 원망한단 말인가? " "방금 마누라쟁이 말을 들어보지. 나중에 원망 아니할까. " "그럴 리두 없지만 설혹 내가 내일 하루 약물을 안 먹어서 속병이 낫지 못한 다손 잡드래두 내가 원망 안 하면 고만이지 다른 사람의 말까지 족가할 것 무어 있나. " "장기 두는 구경을 별루 즐기지두 안하면서 구태어 같이 갈 건 무어 있 소. 약물을 한 차례라두 더 먹는 것이 워낙 좋으니 고만두우. " "긴말할 것 없이 내일 같이 가기루 하구 오늘은 우리 술이나..

임꺽정 5권 (15)

그날 밤에 천왕동이가 오주와 같이 손가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식전 일찍들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놓을 때 "인제들 일어나? " 하고 손노인이 방으로 들어 왔다. 손가가 "꼭두식전 웬일이시오? " 하고 물으니 손노인은 "정신날 때 장기 한번 둘라구 왔네. " 하고 대답하며 곧 천왕동이를 보고 "한번 안 두려나? " 하 고 물었다. 천왕동이가 싫단 말을 하지 않고 곧 장기판을 벌이니 오주가 "장기 두구 언제 갈 테야, 아침들 안 먹구 기달리구 있을 텐데. " 하고 천왕동이를 나 무랐다. 손노인과 천왕동이는 다같이 말대꾸도 아니하고 장기를 두기 시작하여 만참 동안 서로 장군 멍군 하더니 손노인에게는 민궁에 마포가 남고 천왕동이에 게는 양상과 사졸이 남게 되었는데 손노인이 이길 포서는 없어졌지만 비길 수가 있을까 ..

임꺽정 5권 (14)

제 4장 황천왕동이 늦은 봄이다. 꽃 찾는 나비들은 멀리멀리 날아다니고 벗 부르는 꾀꼬리들은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때다. 임꺽정이의 집 앞뒤 마당에 풀이 많이 나서 어느 날 꺽정이가 처남 황천왕동이와 아들 백손이에게 풀을 뽑으라고 말을 일렀다. 천왕 동이가 매형의 말에 상을 찡그리면서도 마지 못하여 생질을 데리고 풀을 뽑으러 나서는데 앞뒤 마당을 둘이 갈라 맡아 뽑기로 하다가 풀 적은 앞마당은 생질에 게 빼앗기고 풀 많은 뒷마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좁지 않은 마당에 풀이 무더기 로 나서 낱낱이 뽑지 않고 북북 쥐어뜯어도 한 나절이 좋이 걸릴 모양이라 천왕 동이가 얼마 뽑다가 성가신 생각이 나서 삽을 갖다가 쓱쓱 밀어나갔다. 이때 울 뒤에 섰는 느티나무에서 꾀꼬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꾀꼬리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