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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3)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늙은이가 고만 자자고 말하여 이불 하나를 고부 같이 덮 고 누웠을 때 별안간 삽작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곧 여러 신발소리가 들리었다. 안방의 고부가 일시에 이불을 젖히고 뛰어일어났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삽 작을 부수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수효가 근 십 명인데 손에 무엇을 든 사 람도 한둘이 아닌 성불렀다. 영문 모르는 늙은이가 벌벌 떠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가가 사람 몰고 온 것을 짐작하고 김가가 연놈을 죽이고 거침없이 같이 살겠다고 할 때 단단히 차리고 오라고 당부까지 한 계집이 역시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건넌방 문이 펄떡 열리며 “너희놈들이 다 누구냐?” 돌석이의 야 무진 말소리가 들리고 마당에서 발을 구르며 “이놈아 내 기집 내놔라. " 김가의 볼멘 ..

임꺽정 5권 (32)

“김가가 어젯밤에 여기서 잤다지?” 계집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상관된 지 가 오래겠구나” 계집의 고래가 가로 흔들리었다. “오래지는 않더래두 어제가 처음은 아니겠지?” 계집이 홀저에 고개를 들고 “잘못했으니 용서하시오”하고 목구멍에서 끌어당기는 소리로 말하였다. “예끼 순 더러운 년”하고 돌석이가 계집의 얼굴에 침을 뱉으니 계집이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앉아서 홀 짝홀짝 울기 시작하였다.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를 보고 “저년이 임자의 남편하 구 서루 눈맞은 지가 오래요. 우리하구 같이 처음 저년을 만났을 제 벌써 연놈 의 눈치가 다 수상했었소”하고 말한 다음에 “지금 나는 저년을 아주 속시원하 게 임자의 남편에게 내줄 생각이 있는데 어떻겠소? 임자의 말부터 좀 들어봅시 다”하고 말하니 김가의 안해..

임꺽정 5권 (31)

돌석이가 먼저 수양모를 보고 "어째 싸움이 났소?" 하고 물어서 수양모가 까닭없는 일에 죽을 욕을 보았다고 증언부언 하소연하는데 김가의 안해가 자기 잘못이 없는 것을 변명하려고 말가리를 드니 "임자 말은 나중 들을 테니 잠깐 가만히 있수. "하고 돌석이가 눌렀다. 수양모의 하소연이 되씹는 말이 많은 것을 참고 듣다 못하여 "인제 다 알았으니 고만두우. " 하고 무질뜨리고 "자, 임자 말을 들읍시다. "하고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 를 향하고 앉았다. 며느리 간 곳을 일러주지 않고 모른다고 속이니까 자기가 골 이 났다. 자기를 떠다 박지르니까 머리채를 잡은 것이지 자기가 선손 건 것이 아니다. 김가의 안해가 발명을 부산하게 하니 돌석이가 "그까짓 말은 듣지 않아 두 좋소. " 하고 가로막고 "내가 말을 물을 ..

임꺽정 5권 (30)

옥련이는 할 말이 없든지 “긴 사설 고만두어요. "하고 고개를 밖으로 돌리니 이방이 딸의 뒤를 받아서 사위를 데리고 말하였다. “네 말대루 하면 사람을 사 귀는데 근본을 보지 않더래두 인물은 보아야 하지 않느냐?”“인물은 물론 보아 야지요. "“인물은 어떻게 보느냐?”“어떻게 보다니요? 눈으로 보구 인물을 알 지요. "“인물을 보는데 신수두 보구 기상두 보구 행동두 보구 재주두 보구 여러 가지 보는 것이 있지만 이것저것 다 고만두구라두 상 하나는 보구 사궤야 낭패 가 없다. 그렇기에 옛날 유명한 사람은 대개 다 상 보는 법을 짐작해서 지인지 감이 있단 칭찬들을 들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없지만 배돌석이 상이 잘 죽을 사 람의 상이 아니더라. 얼굴은 반상이구 눈은 사목인데 사목이란 뱀의 눈이야. 그 런 사람..

임꺽정 5권 (29)

3 백이방이 집안 식구는 일어난 지 벌써 오래고 사랑을 빼앗기고 안방에서 잔 이방까지 일어난 뒤 한참 되었건만, 사랑에서 자는 사위와 손은 한밤중만 여기 고 자는지 코고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이방이 자기 안해를 보고 “이애 가 늦잠을 굉장하게 자는군. 아마 가서 깨워야 일어날 모양일세. "하고 사위를 깨우러 나가려고 하니 그 안해가 “내가 어젯밤에 닭 운 뒤에 누웠는데 그때까 지도 사랑에서는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납디다. 밤을 밝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 소. 좀더 자게 깨우지 말고 내버려 둡시다. "하고 이방을 나가지 못하게 말리었 다. “조사는 어떻게 하구?”“하루 좀 비어먹으면 어떻소?”“늦잠 자구 조사 를 안 보면 쓰나. "“이따 들어가서 병탈을 해주시구려. "“젊은애들이 하룻밤 쯤 새웠기루 ..

임꺽정 5권 (28)

내가 속으로 ‘요년!’ 하면서 한번 허허 웃고 계집과 같이 누웠네. 서방님이란 자가 그동안 아씨 단속에 꿈쩍을 못하다가 인제 나 없는 틈을 타서 행랑 출입 을 시작한 모양이라. 내가 한번 제독을 단단히 주려고 속으로 별렀었네. 그 뒤 사오 일 지나서 보름 대목장날 장 구경을 나갔다가 옛날 남역서 살때 이웃하여 살던 사람을 만나서 술잔을 나누고 헤어질제 그 사람이 한번 놀러오라 고 말하기에 내가 그리하마고 대답했었네. 대답할 때 그 사람에게 놀러가고 싶 은 생각 외에 딴 생각이 있었네. 그날 밤에 계집더러 내일은 창원 가서 아는 사 람 좀 찾고 하룻밤 묵어서 모레 오겠다고 말하고 이튿날 식전에 사랑에 들어가 서 서방님에게 하루 말미를 말하여 첫말에 허락을 얻고 또 안에 들어가서 아씨 께 말하고 아침 먹은 ..

임꺽정 5권 (27)

아씨가 서방님에게서 외면하면서 나를 보고 "너는 고만 나가거라. " 하고 말하여 나는 밖으로 나오다가 내외간 말다툼하는 말이 궁금해서 안중문간 안에 서 발을 멈추었네. "비부를 들이더라두 사람이나 골라 들여야지. " "그래서 내 가 당신께 골라 들이시랬지요. 나같이 안방구석에 들어앉았는 사람더러 고르라 고 해노시고 지금 와서 무슨 말씀이오? “ "아무리 들어앉았더래두 배가가 양순 치 못하단 말은 들었겠지? ” "석전질을 잘하고 대정이란 벼슬을 했단 말은 들 었소. 비부쟁이로 과하지 않소? " "망나니니 개고기니 별명이 있는 자야. 과하긴 무에 과해! " "사람은 부리기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내가 실 수 없고 저를 잘 대접하면 휘어 부립니다. " "그자가 좋지 못한 사람인 줄까지 알구서 ..

임꺽정 5권 (26)

나는 김도사집 비부쟁이 노룻 하게 되는 것이 투석대 대정 첩지를 받을 때만 큼이나 맘에 좋았네. 내가 비부 노룻 하게 된 것이 작년 늦은 봄일세. 우리게 늦 은봄에는 노인도 흩것을 입는데 그때 나는 짠지국같이 된 겹옷을 입고 있었고 갓은 파립이고 망건은 파망이니 아무리 남의 집 비부쟁이라도 장가 명색을 들러 가며 그 꼴을 하고야 갈 수 있던가. 만만한데 한군데 가서 흩것 한벌을 우격다 짐으로 뺏고 또 다른 데 한 군데 가서 성한 관망을 억지로 빌렸네. 흩것을 입고 관망을 쓰고 이튿날 식전에 김도사집에를 가는데 일찍이 오란다고 너무 일찍이 가서 사랑 대문도 아직 열어놓기 전이데. 대문 밖에 초가 행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비었고 한 채는 사랑이 들었데. 사람 든 행랑 앞을 왔다갔다 하자니까 그 집 사내..

임꺽정 5권 (25)

늙은 여편네가 돌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저애가 내 며느립니다. " 하고 면면이 절을 시키었다. 그 며느리가 나이는 이십오륙 세쯤 되어 보이고 얼굴은 해반주그레하였다. "점심을 얼른 지어라. " 늙은 여편네가 며 느리를 내보낸 뒤에 "술들 잡수시겠지요? " 하고 물어서 사냥꾼 한 사람이 "없 어 못 먹습니다. " 하고 대답한즉 "손님들만 두고 나는 갈 수 없고 어떻게 하나! " 하고 한걱정하다가 말대답한 사냥꾼더러 “술을 좋아하시는 말씀이니 미안하 지만 술 좀 받아가지고 오실라오? 좁쌀을 떠드릴께. " 하고 청하였다. 손님들만 두고 갈 수 없다고 손님을 심부름 보내려고 하는 것이 성한 사람의 일이 아니 다. 그 사냥꾼이 웃으면서 "내가 술집을 모르니 어떻게 하우. " 하고 말한 다음 에 돌석이가..

임꺽정 5권 (24)

이튿날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을 데리고 호랑이 사냥을 떠나는데 찰방이 돌 석이를 보고 "대개 며칠이나 걸리겠느냐? " 하고 물으니 돌석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날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소인의 겉가량으루 열흘 잡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오냐, 열흘도 좋다, 그 동안 내가 궁금하면 사람이라도 보내볼 터이 니 너희들이 가서 숙소를 한 곳에 정한 뒤에 곧 한번 기별해라. " "죽은 놈의 자 식이 오릿골 저의 매가루 같이 가자구 합니다. " "그자의 자식두 사냥 간다느냐? " "녜, 호랭이 잡는 데까지 따라다니겠답니다. " "그러면 사람을 보낼 때 오릿골 로 보낼 테니 그리들 알고 가거라. " 돌석이와 사냥꾼들이 죽은 역졸의 아들아이 를 앞세우고 오릿골로 왔다. 죽은 역졸의 사위는 그 처남아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