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24

혼불 5권 (54)

그리고 그 비석의 뒷면에 적혀 있는 그리운 문자들은 "공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사 대에서 세 분의 정승의 났으니 공은 본디 겸허한데가 또 가문이 융성한 때문에 그 마음은 더욱 벼슬에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경(참판의 별칭)의 열에서 의직을 원하여 절라부백(전라관찰사)이 되었으나, 얼마 후 그만두고 돌아와 향리에서 여생을 보낸 지 십여 년이 되었다. 금상(임금)이 자헌의 품계를 특별히 더하여 형조판서를 제수하자 공은 받지 않고 상소하여 사양하니, 비답한 말씀이 특별히 많았고 공을 부르는 전지가 잇달아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말씀을 적고 있다. 청빈하고 용모가 아름다워 보는 이에게 감화를 주며, 그 행실이 단정하고 학문이 높았던 그 선조의 한평생 살아온 흔적이, 한 집안은 물론이요, 향리와 나라에 빛..

혼불 5권 (53)

살아서는 유명이 달라 명부의 그림자를 좇아갈 수 없었으나, 이제 죽어 가벼운 혼백이 되었는데도 바로 가서 만나지는 못하고, 아직도 더 기다릴 일 남아서, 가슴에 맺힌 애를 다 삭히고 썩이어 온전히 씻어 내고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사람. 이승에서 만났던 단 사흘의 인연으로 한세상을 다하여, 오직 그가 남긴 시간을 살고, 죽어서도 한 삼 년은 더 기다려야 갈 수 있는 이 사람의 그 무엇이 그토록 컸던 것일까. 청암부인은 이승을 벗어 놓고 저승으로 가면서, 이 어린 신랑 준의가 써서 보낸 달필의 혼서지를 신발로 만들어 신고 갔다.  時維孟春(시유맹춘) 尊體百福(존체백복) 僕之長子俊儀(복지장자준의) 年旣長成(연기장성) 未有沆麗伏蒙(미유항려복몽) 尊玆(존자) 許以(허이) 令愛(영애) 항室(항실) 玆有先人之禮..

혼불 5권 (52)

"핫다, 자네 참 무선 사람이네." "누구는 용해 빠져 갖꼬." "헤기는 나쁠 거이사 없겄제. 혼백 되야 합방을 해도 음양이 만났잉게 내우 합장헌 거이나 머 달를 것도 없고, 생각허기 나름일 거이여." "그렇당게요. 나는 재미가 나 죽겄소. 응골지게 그런 자리가 날라고 그렇게 애가 말르게 지달렀등게비여." "어차피 도적질?" 만동이는 백단이의 말을 되뇌었다. 그리여. 어차피 의지헐 빽다구 못 타고난 설움으로 한세상 스산허게 살다 간 인생이 원통해서, 좌청룡 우백호, 실허고 아늑헌 무릎 빽다구 속으로 들으가 자리잡고 싶었던 것이닝게, 헐라먼 큰 도적질허제, 기왕. 아조 그 음기끄장. 그러서요, 아부지 거그서 좋은 아들 하나 낳으시오. 실허고 좋은 놈으로, 양반 중의 양반이요, 천골 중의 천골인, 두 유골이..

혼불 5권 (51)

물론 누구네 집으로 굿을 하러 가거나, 어디서 문복하러 오는 사람들한테서도 사람들 소식은 가랑니야 서캐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비오리네 주막에 떨어지는 소식이 제일 빨랐다. 그리고 제일 정확했다. 그것은 여러 갈래 여러 골의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한자리에서 모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백단이는 고리배미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지 않을 때도 유난스럽지 않을 만큼 비오리네 주막에 들러 비오리와 그 어미를 만나는 척하면서 요령껏 소문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백단이보다는 만동이가 주막에는 이무러워. 틈만나면 그는 마치 일없이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러 온 것처럼 혼연스럽게 평상에 앉아 있곤 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생김새 곱상하고 자세에 태깔이 있어 반드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