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비석의 뒷면에 적혀 있는 그리운 문자들은 "공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사 대에서 세 분의 정승의 났으니 공은 본디 겸허한데가 또 가문이 융성한 때문에 그 마음은 더욱 벼슬에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경(참판의 별칭)의 열에서 의직을 원하여 절라부백(전라관찰사)이 되었으나, 얼마 후 그만두고 돌아와 향리에서 여생을 보낸 지 십여 년이 되었다. 금상(임금)이 자헌의 품계를 특별히 더하여 형조판서를 제수하자 공은 받지 않고 상소하여 사양하니, 비답한 말씀이 특별히 많았고 공을 부르는 전지가 잇달아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말씀을 적고 있다. 청빈하고 용모가 아름다워 보는 이에게 감화를 주며, 그 행실이 단정하고 학문이 높았던 그 선조의 한평생 살아온 흔적이, 한 집안은 물론이요, 향리와 나라에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