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타고난 기를 죽이지 않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가, 건춘문을 지키는 갑사로부터 시작하여, 세조의 특채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세조 14년 무자년에 문과 급제 장원을 하였다. 문과 급제후, 그의 벼슬은 자꾸 올라가 병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성종 24년 팔월에는 예조판서, 대사헌을 지낸 명신 성현과 더불어 악학궤범을 편찬, 완성하였다. 이렇게 조정에 굳은 기반을 가진 기성 세력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던 무령군 유자광은 영남 출신인 사림파들과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결국 연산군 4년에는 무오사화를 일으키어 사림파를 한 손으로 쓸어 무참하게 죽이니, 조야에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일신으로만 본다면, 이일로 감히 누가 그 뜻을 어기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위세를 떨치게 되어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