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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22)

금부도사는 임진가서 임진 가서 하룻밤 숙소하려고 예정하였던 것인데 의외로 중로에서 이봉학이를 체포하게 되어서 예정을 변경하여 고양읍을 숙소참 대고 회정하였다. 도사가 봉학이를 보고 “고양읍에 가선 집교보를 변통해서 태워 주까?” 하고 묻는 말에 “서울까지 걸어가두 좋소이다.” 이봉학이는 대답하고 갖신 벗고 미투리 신고 나졸 군사들과 같이 걸었다. 이봉학이가 오랏줄 지우고 길을 걷는 것이 생외의 처음이라 마음의 창피한 것과 몸의 거북한 것이 이를 데 없으나 자기의 창피하고 거북한건 오히려도 여차이고, 계향이의 소리없이 우는 꼴이 차마 보기 어려웠다. 계향이가 처음에는 구상전 만난 종의 자식같이 정신 없이 떨기만 하다가 떠는 것이 진정되면서부터 두 눈에 눔물이 샘솟듯 하는 것 을 씻다 못하여 치맛자락으로 멀..

임꺽정 6권 (21)

황천황동이가 이봉학이의 놀라워하는 눈치를 보고 적이 웃으면서 아랫목에 내려와 앉을 때 봉학이는 “밖에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나?” 하 고 물으며 곧 앞미닫이를 활짝 열어놓았다. “마침 밖에 아무도 없기에 그대루 막 들어왔소.” “대체 어째 왔나?” “서울 가는 길이오.” “서울은 어째 가 나?” “소문 좀 들으러 가우.” “이 사람아, 지금이 어떤 판인 줄 알고 나섰 나. 포교들이 길가에 널렸네. 사람들이 대담해두 분수가 있지 않은가. 공연히 서 울 갈 생각 말구 도루 가게.” “포교가 나를 어쩌겠소. 아까 이 나룻가에 와서 두 기찰을 당했지만 시임 황해감사 신희복의 삼종질 신생원에게 저희가 고개나 숙였지 별 수 있소.” “자네가 신생원 행세하나 만일 얼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탈 아닌가?” “양주읍에 들..

임꺽정 6권 (20)

계향이가 자리에 누울 때 닭이 울었다. “요새 닭이 퍽 더디 울어요.” 계향이 말끝에 “그 수닭이 묵은 수닭이지?” 이봉학이가 동떨어진 말을 물으니 계향이 는 속으로 괴이쩍게 생각하며 “네.” 하고 대답하였다. “묵은 닭이라 변덕이 나서 우는 때가 들쑥날쑥하는가베.” “실없는 말씀 고만두세요.” “쓸데없는 근심 말구 잠을 잘 자게. 그러면 닭이 어련히 때맞춰 울겠나.” “참말로 요새같 이 밤이 지리해선 사람이 못살겠어요.” “오늘 밤두 지리한가?”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밤은 별난 밤인가요?” “여편네가 사내하구 같이 자며 밤이 지리하다면 그건 사내를 소박하는 표적일세.” “듣기 싫어요.” “할 말이 많은데 듣기 싫다니 그만두는 수 밖에. 그럼 잠이나 자야겠다.” “졸리시지 않 거든 내 이야기 좀..

임꺽정 6권 (19)

꺽정이는 칼을 들고 앞에 서서 황천왕동이는 창을 메고 꺽정이의 식구와 같이 중간에 서고 박유복이는 쇠표창 대여섯 개를 손에 쥐고 뒤에 서서 술렁거리는 양주읍내를 무인지경같이 지나나오는 중에 꺽정이의 발길이 자기 집 있는 곳으 로 향하였다. 꺽정이의 집과 최가의 집은 다 타서 주저앉고 최가의 집 이웃집까 지 타서 겨우 뼈대만 남았는데 불 잡던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서 웅긋쭝긋 서 있다가 꺽정이의 일행이 오는 것을 보고 와 하고 흩어졌다. 꺽정이가 불탄 집 앞에 와서 발을 멈추자, 애기 어머니가 꺽정이 옆으로 쫓아나오며 “여기가 우 리 집 아니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백손 어머니가 마저 시누이 옆으로 나서려 고 할 때 꺽정이는 벌써 앞서 걸어나갔다. 길목 지키는 사람들이 먼빛 보고 도 망들 하여 꺽정이의..

임꺽정 6권 (18)

서림이가 중언부언 이해를 말하고 천왕동이가 조급하게 결정을 재촉하여도 꺽정이는 이렇다 저렇다 대답 한마디가 없어서 사람이 좀 늘쩡한 유복이 까지 답답하게 생각하여 “당초에 말이 없으니 사람이 답답하지 않소. 대체 형님같이 과단성 많은 이가 오늘은 웬일이오?”하고 말하였다. 얼마 뒤에 꺽정이가 꿈꾸다가 깬 때와 같은 태도로 “서장사 말대루 할 테니 식구 빼내올 계책을 서장사가 담당하우.”하고 말하여 서림이는 선뜻 “그건 염려 맙시오.”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따루 할 일이 있소.” “무슨 일인가요?” “이웃집에 버릇 좀 가르칠 것들이 있소.” “녜, 고발한 놈 말씀이지요.” 꺽정이가 한번 고개를 끄덕하였다. “내가 알아서 사람을 분배하오리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떻게 하실 텐가요?” “내던지구 가지 별수 있..

임꺽정 6권 (17)

꺽정이가 수교를 노리며 쫓아나가다가 한번 뛰어 수교 뒤로 넘어가서 바른팔을 잡아젖 히고 칼을 뺏었다. 장교와 사령들이 이것을 보고 쫓아올 때 꺽정이는 벌써 칼을 쥐고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였다. 꺽정이가 삽시간에 장교 사령 이십여 명을 치는데, 치는 것은 칼등이라 사람은 하나도 상치 아니하였으나 치는 곳은 바른 팔이라 병장기를 모두 떨어뜨리어서 옥문에 기대서서 구경하던 황천왕동이가 땅 에 떨어진 칼과 창을 집어다가 한옆에 모아놓았다. 장교와 사령들이 슬금슬금 뒤를 빼려고 드는 것을 꺽정이가 보고 소리를 질러서 도망질들을 치지 못하게 한 뒤에 “인제 꺽정이를 함부루 건드리지 못할 건 알았소?”하고 수교를 바라 보니 수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저기 또 한 패가 오는구려.” 황 천왕동이가 소리..

임꺽정 6권 (16)

황천왕동이가 옥에서 돌아왔을 때 꺽정이는 멍하니 안방에 앉아 있었다. “형 님을 잡으러 한떼가 나왔다더니 안 왔습디까?” “지금 막들 왔다갔다.” “형 님을 가만두구 갔으니 웬일이오?” “초상 상제라구 인정 쓰구 간 모양이다.” “나는 옥에 가서 보구 왔소.” “병들이나 없다더냐?” “누님이 장독이 나서 말 아니구 팔삭동이가 다 죽어갑디다.” “옥사쟁이가 말썽부리지 않더냐?” “ 그까지 자식이 말썽부리면 소용 있소. 한옆으루 떠다밀구서 애기 어머니하구 이 야기했소.” “우리 누님은 장독이 안 났다더냐?” “애기 어머니는 괜찮은갑디 다. 형님더러 관가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오라구 말하랍디다.” “지금 좀 가보 구 올까.” “나하구 같이 갑시다. 내가 가서 옥쇄쟁이를 붙들구 실랑이할께 그 틈에 형님 애기 어..

임꺽정 6권 (15)

3 꺽정이가 천왕동이를 데리고 청석골을 떠나서 일력을 다하여 임진까지 왔으나 나루를 건널 수가 없어서 나룻가에 하룻밤을 드새고 이튿날 식전 첫배를 타고 건너온 뒤 줄달음을 치다시피하여 점심 나절도 채 되기 전에 양주 집에를 들어 왔다. 반겨 내닫는 애기를 보고 꺽정이는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 바로 아비 방 에 와서 방문을 열었다. 눈이 뜨이는 것은 얼굴 덮은 홑이불폭이요, 코를 찌르는 것은 살 썩는 시취라 꺽정이는 정신이 아뜩하며 눈앞이 캄캄하여 털썩 주저앉았 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나 왔소. 꺽정이 왔소.”하고 홑이불 폭을 걷어치니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 아비의 얼굴이 아니다. 꺼진 눈자위, 악물린 이빨, 어디가 조금이나 보던 얼굴 같을까. 꺽정이가 다시 넋 ..

임꺽정 6권 (14)

이날 밤에 여러 두령과 서림이가 오가의 집 사랑에 모여서 꺽정이를 술대접하 였는데 술 사이에 운달산 박연중이 소굴 빼앗긴 이야기가 나서 꺽정이가 듣고 옆에 앉은 오가를 돌아보며 “연중이가 잡히지나 않았답디까?”하고 물으니 오 가는 “박연중이가 왜 시라소니요, 잡히게.”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오가의 대답을 받아서 “박연중이가 시라소니는 아니라두 두꺼비는 틀림없지요.”하고 웃고 여러 사람이 두꺼비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서림이가 다시 “ 두꺼비라 돌에 치었지요.”하고 웃어서 여러 사람이 다같이 웃었다. “여기는 정 작 아무 뒤탈이 없었지?”하고 꺽정이가 물으니 “곱게 먹구 새겼지. 탈이 무슨 탈이오. 금교역말 술집 주인이 매맞은 것이나 탈이라구 할까.”하고 오가가 꺽정 이의 말을 대답한 뒤 곧..

임꺽정 6권 (13)

“저 물건들이 어디서 난 것들이냐?” “소인네 동생과 상종하는 양반님네들이 보내 신 것이올시다.” “소인네가 천한 백정이오나 소인네 아비는 이찬성 부인과 내 외종 남매간이옵고 소인네 시아비는 서울 재상님네와 친분이 있었삽고 소인네 동생도 여러 양반님네와 상종이 있삽는데 소인네는 다압지 못하오나 지금 함경 감사께도 친쫍게 다닌다고 하옵디다.” “함경감사가 누가란 말이냐?” “전라 감사와 경기감사를 지냅시고 함경감사로 나갑신 양반 말씀이올시다.” “백정의 자식으론 발이 대단 너르구나.” 하고 군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네 동생 은 어디를 갔느냐?” 하고 말을 고쳐 물었다. “임진별장 이봉학이란 자가 놀러 오라고 해서 가옵는 길에 황해도 봉산 사는 처남을 다리고 가온 까닭에 봉산까 지 갔다 올 듯 하외다...